<벗어날 탈 脫> 관객과의 대화 기록 2024.03.09.
참석 서보형 감독, 임호준 배우, 위지원 배우, 성용훈 배우
진행 류승원 모더레이터
기록 김가율
류승원: 안녕하세요. <벗어날 탈 脫>의 진행을 맡은 관객프로그래머 류승원이라고 합니다. 먼저 감독님, 배우님들 간단한 인사 부탁드리겠습니다.
서보형: 안녕하세요. <벗어날 탈 脫>을 연출한 서보형입니다.
임호준: 네. 안녕하세요. <벗어날 탈 脫>에서 ‘영목’ 역할을 맡은 배우 임호준입니다.
위지원: 안녕하세요. 영화 <벗어날 탈 脫>에서 ‘지우’ 역을 맡은 배우 위지원입니다. 반갑습니다.
성용훈: 네. 안녕하세요. <벗어날 탈 脫>에서 ‘검은 옷’을 연기한 배우 성용훈입니다. 반갑습니다.
류승원: 그럼 본격적으로 GV를 시작해보겠습니다. 서보형 감독님께서는 지난 2018년 대구단편영화제에 <탈날 탈 頉>이라는 영화를 상영하면서 오오극장을 찾아오신 적이 있으신데요, 당시 ‘탈’이라는 제목을 시리즈화하겠다는 말씀을 직접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이번 <벗어날 탈 脫>의 제목의 의미 그리고 어떻게 이 영화를 만들게 되었는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서보형: 처음에는 탈 시리즈를 세 편으로 기획했습니다. 그리고 탈 시리즈를 하나로 묶기 위한 몇 가지 규칙을 정했어요. 첫째, 남녀가 한 명씩만 등장한다. 두 번째, 우리 집에서 찍는다. 왜냐면 싸게 드니까. 세 번째는 한자 안에서 이야기를 발견하자. 그리고 네 번째로 거문고 음악을 사용하자. 이런 몇 가지 규칙 안에서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제가 불교에 심취해서 영목처럼 한 3~4년 동안 좌선과 108배를 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깨달음을 너무 얻고 싶었거든요. 그때 되게 오묘한 어떤 경계가 사라지는 순간을 겪은 적이 있어요. 그 순간을 어떻게 영화 언어로 시각화 할 수 있을까? 이건 불가능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오히려 한 번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영화의 또 다른 제목이 ‘불일불이’(不一不二)예요. ‘너와 내가 하나가 아니지만 둘도 아니다. 같지 않지만 다르지도 않다’라는 불교철학에서 가져왔습니다. 우리 언어는 분별하는 속성이 있잖아요. 이 언어의 분별을 벗어난 어떤 지점 즉 경계를 벗어난 지점에 대한 깨달음이 중요한데요, 이걸 영화의 형식으로 가지고 와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공존시키면서 분리법처럼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닌 이 관계를 다루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류승원: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지점이 균열이었던 것 같아요. 영목의 반복되는 일상에서 중간 중간 방해받는 요소들이 재미있었는데 이런 훼방의 요소들을 담으려고 했던 이유가 있을까요?
서보형: 일단 영목이 생각보다 되게 집중을 못하잖아요. 그게 저는 되게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균열의 예들이 되게 많은데 하나를 콕 집어서 얘기하자면 냉장고인 것 같아요. 냉장고의 벌어진 틈. 영화에서 영목과 지우의 두 세계는 평행 우주 같기도 하고 시간적인 선후 관계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잖아요. 저는 냉장고의 틈이 그 두 세계 사이의 틈으로 작용한다고 느껴졌어요. 그래서 결국 그 틈이 두 세계를 연결하기 위한 어떤 문처럼 다가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류승원: 그 틈이 영목과 지우를 연결한다니 흥미로운 지점이네요. 이제 배우님들께 질문 드리겠습니다. 먼저, 임호준 배우님께서는 ‘영목’ 역을 어떻게 준비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임호준: 최대한 마음을 비운 상태로 임하려고 노력했어요. 영목의 루틴과 상태는 감정과 생각이라는 두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사람의 감정은 생각으로부터 생긴다고 생각해요. 어떤 생각이 있기 때문에 그 생각에 대한 감정이 생기는 것이죠. 또 재미있게도 이렇게 생긴 감정 때문에 생각이 계속 이어지고 발전되고 또 와전되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현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의 기본적인 자의식이라고 해야 할까요. 제 삶을 돌아봐도 그래요. 저도 인간관계에서 항상 의도치 않게 고통을 줄 때도 있고 고통을 받을 때도 있는데요, 고통의 원인도 그런 것 같아요. 어떤 현상을 겪었을 때 그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고 감정이 생겨나요. 그리고 부정적인 감정이 생김으로 인해서 그 생각이 발전되고 또 와전되면서 다시 고통을 받죠. 저도 이런 식으로 고통을 더 극대화했던 것 같아요. 영목이라는 인물도 저와 같은 상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세상과 단절하고 자신의 연인인 선화와의 관계도 끊어버리고, 어쩌면 죽을 병이 없을지도 모르는데 뭔가 죽음으로 가고 있다고 착각하게 되는 지점들은 영목 스스로가 발전시킨 것은 아닐까. 그런 부분들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배우로서 감정을 유지하면서도 그 감정과 생각을 계속 갖고 있는 순간 영목의 온전한 정신 상태를 와전시킬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오히려 생각을 비우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대사가 많이 없는 작품에 임했을 때 배우로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큰 무기를 잃어버린 채로 가야한다는 두려움이나 불안감이 들기도 해요. 그런 불안을 좀 떨쳐내려고 마음을 비우려고 노력했습니다.
류승원: 이 캐릭터에 대한 탐구가 영목의 모습에 대입이 되면서 배우님과 잘 어울리는 배역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 위지원 배우께도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제가 인터뷰를 찾아보니 평소 성향은 어려운 일들도 스스로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잘 극복하시는 타입인 것 같고 탐구심도 되게 많으신 것 같은데 배우님께서 본인이 맡은 지우라는 역할에 대해서 어떻게 준비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위지원: 저 같은 경우는 경험을 많이 쌓아야겠다는 생각에 제가 가지고 있는 탐구심을 가지고 지우라는 역할이 뭘 보여줘야 할까, 또 환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를 생각하면서 준비했어요. 일단 대본 자체에 대사가 많이 없고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말들이 많기도 했었고, 후반 작업에 추가된 내레이션 부분도 그렇고 저는 그냥 그 대사의 의미를 계속 복기했던 것 같아요. 이런 의미일까 저런 의미일까. 근데 사실 영화가 만들어지고 나서도 그렇고 개봉한 이후에 몇 번을 봤을 때도 매 순간 좀 다르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더라고요. 이런 과정 자체도 지우가 영감을 찾는 과정이랑 똑같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그냥 배우로서 어떻게 연기하면 좋을까를 늘 고민하면서 현장에서 열심히 임했습니다.
류승원: 성용훈 배우님께도 질문 드리고 싶은데, 크레딧에서도 알 수 있듯이 캐릭터의 이름조차 명명되지 않잖아요. 이 캐릭터에 대한 해석의 여지가 많은 반면에 연기하기 굉장히 모호한 지점도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준비하셨나요?
성용훈: 사실 검은 옷의 캐릭터는 저 자체이거든요. 비를 맞고 옷을 탈의하는 신에서 잠깐 스치듯 흉터들이 아마 보였을 겁니다. 그게 실제로 제가 2016년도에 전신 화상 사고를 당했어요. 지금은 잘 극복을 했는데요. 극복을 하고 다시 활동을 하다가 우연히 서보형 감독님을 알게 되었어요. 저의 그런 에피소드들을 알게 된 상황에서 마침 딱 제가 필요한 역할이라 저한테 조심스럽게 여쭤봐 주셨어요. 저는 흔쾌히 오케이를 했고요. 그래서 저는 준비할 때 최대한 제가 행했던 아픔을 딛고 일어서는 과정을 잘 끄집어내려고 했고 잘 담아내려고 했던 것 같아요. 영화에서 먼 발치에서 호수를 바라보는 장면도 실제로 마음을 비우려고 하는 과정에서 제가 했던 행동들이거든요. 감독님께서 그런 것들을 배역에 잘 살려주셨던 것 같습니다. 이번 작품을 위해서 급하게 춤을 배우긴 했어요. 터키 전통 의식 수피 댄스라는 춤이 있는데 그건 연습을 해야 했어요. 대구 시립무용단 단원분들에게 도움을 받아서 연습을 했어요. 이게 10바퀴만 돌아도 되게 힘들더라고요. 엄청 어지러워서 몇 번 토할 뻔 했죠. 감독님께서 제가 도는 걸 보고 약간 쉬워 보였나 봐요. 따라하시더니 막 비틀비틀 하시더라구요.
류승원: 짧은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임팩트 있는 춤사위였고 몸짓이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어서 더 잘 전달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Q: 엔딩에 관한 질문인데요. 마지막에 두 주인공이 연결되는 모습이 보이지만 영화는 엔드가 띄워지면서 마무리가 되었는데 엔딩에 대한 감독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서보형: 아까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이 영화는 불이법을 구조적으로 가지고 왔어요. 그걸 이미지적으로 상징하는 장면이 두 개의 나무가 묶여 있는 장면이죠. 그게 들 입(入)자 형태로 묶여 있는데요. 결국 이 영화는 관점에 따라 이야기를 다시 읽을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한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지우의 관점으로 봤을 때랑 영목의 관점으로 봤을 때 완전히 다른 이야기로 읽힐 수 있는 거죠.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두 개의 나무가 서로 상호 의존적인 관계 속에서 묶여 있는 것처럼 이 영화는 한쪽 이야기가 없으면 성립이 안 되는 영화라고 생각하거든요. 마지막에 빨간 옷을 입은 지우가 물컵을 들고 있는 그 이미지 자체에 통합의 느낌이 있죠. 하지만 디엔드가 뜨면서 영화가 끝나잖아요. 통합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하게 하나가 아닌 개개인이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의 통합의 느낌을 주고 싶었습니다.
임호준: 제가 어제 집에서 한 번 더 영화를 보고 왔거든요. 그때 좀 느낀 게 있었어요. 저는 이 영화가 시작과 끝에 관한 얘기라고 생각하는데 보통 사람들은 끝에 대한 두려움이 있잖아요. 지우도 그렇고요. 근데 또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사람의 삶이 끝이 있어야 또 시작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어쩌면 영목 관점에서는 지우의 존재나 귀신 환의 존재가 영목의 감정 상태를 대변하는 인물이고, 지우의 관점에서는 자신의 어떤 영감을 찾는 데 있어서 필요한 존재, 그런 요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관점에서 한 번 더 봐주시면 너무 감사할 것 같습니다.
Q; 음악은 어떻게 작업하셨나요? 그리고 거문고 악기를 한정해서 사용한 것은 우연히 정한 것인지 아니면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선택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서보형: 아까 이 시리즈를 처음 만들 때 제가 정한 몇 가지 규칙에 대해 말씀을 드렸었죠. 그때 거문고 음악을 사용하겠다고 얘기했는데, 박우재라는 거문고 연주자가 제 친한 친구예요. 그분이랑 <탈날 탈 頉>이라는 영화의 작업을 처음으로 하고 이번에 또 작업을 같이 했어요. 거문고 악기를 실제로 들어보면 그 울림이 장난이 아니에요. 너무 좋거든요. 이 영화로 봐도 너무 좋지만 우재만의 어떤 연주법이 있어요. 원래 거문고는 술대라고 해서 작은 막대기를 뜯으면서 연주하는 건데 우재가 현처럼 연주하는 기법을 처음으로 개발했어요. 그 연주 기법이 저는 너무 좋았어요. 그리고 기본적으로 거문고는 나무죠. 이 영화에서 나무가 되게 중요하잖아요. 심지어 영목이라는 이름도 그림자 영, 나무 목이기 때문에 거문고가 가지고 있는 안무적인 속성을 사운드적으로 되게 활용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우재랑 이 영화를 마무리할 즈음에 스튜디오에 가서 거문고가 낼 수 있는 모든 소리를 다 채집했어요. 영화의 초반에는 거문고가 어떤 음악적이기보다는 사운드적인 느낌으로 계속 진행이 되다가 영화가 진행될수록 조금씩 리듬과 멜로디가 생기면서 맨 마지막에는 그게 하나의 어떤 하모니가 된 음악으로 완결이 되도록 구성하려고 했었죠.
Q: 설정상 같은 아파트에서 두 서사가 진행되잖아요. 이렇게 약간 평면적인 세계의 형태로서 두 세계를 나란히 같은 공간으로 선택하시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서보형: 아까 말씀드린 그 원칙 중에 우리 집에서 찍는다는 원칙이 있었는데 그거는 일단 제작비를 절감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저는 우리나라의 아파트라는 공간이 가지고 있는 이상한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세계 어딜 가 봐도 우리나라만큼 아파트라는 이상한 주거 공간을 가지고 있는 나라가 없더라고요. 아파트는 혼자 살고 있는 느낌이 들지만, 어느 순간 단수가 된다거나 아니면 화재 경보가 갑자기 울린다거나 이런 특정한 순간에 사람들이 나만 여기 있는 게 아니구나 하는 어떤 인식이 불현듯 올 때가 있잖아요. 영화에서도 이 단독자들이 개개인의 이야기를 하지만 결국은 묘한 방식으로 연결되고요. 이런 것들이 이 영화에 너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Q: 영화 중반쯤에 영목에게 나타났던 붉은 옷의 여인은 위지원 배우님이 연기를 하셨나요? 하셨다면 그 몸짓들은 어떻게 준비하셨나요?
위지원: 빨간 옷에 검정치마 입은 환도 제가 연기한 게 맞고요. 사실 딱히 준비를 하지는 않았어요. 영화가 주는 메시지를 개인적으로 분별하지 말자는 생각이 있었고 그래서 환이랑 지우를 선을 긋지 않고 환일 때는 환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지우일 때는 지우로서 최선을 다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환은 영목에게 공포의 대상이면서 욕망덩어리라는 느낌이 있었어요. 그래서 영목한테 겁을 줄 때는 어떤 포인트, 어떤 타이밍에 이 사람이 공포를 느낄 것이라고 혼자서 추측하면서 연기를 했었어요. 그리고 유혹하는 장면에서도 혼자서 수행하는 영목이 여러 가지 유혹을 떨치려고 하는 그런 것들을 무너뜨리려는 목적을 가지고 임했던 것 같아요.
류승원: 환의 얼굴이 드러나지 않더라도 어떤 기이한 마음들이 몸짓에 잘 스며들었던 것 같아서 인상 깊었습니다. 성용환 배우님께서는 춤추는 장면뿐만 아니라 강변을 바라보는 연기도 하셨죠?
성용훈: 아까 말씀드렸듯이 제가 사고로 화상 수술을 받았어요. 퇴원 후에는 고향인 경남 창녕에서 쉬고 있었죠. 사실 제일 힘들 때였어요. 화상 흉터는 1~2년 이내에 햇빛을 보게 되면 색이 까맣게 변하기 때문에 절대 햇빛을 보면 안되거든요. 늘 한여름에도 긴팔, 모자, 선글라스, 마스크 그렇게 다녔어요. 영화의 의상도 제가 원래 입었던 그대로 표현을 했어요. 당시엔 힘든 마음을 자연으로 좀 치유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혼자 나가서 멍하니 개울을 바라보고, 들판을 바라보고. 감독님께서 이런 제 이야기들을 잘 반영해 주신 것 같아요. 제가 힘든 상황을 이겨냈던 과정들이 영화에 들어가 있다 보니 제 개인적으로는 성장 영화인 것 같기도 해요. 저한테는 그래서 더 의미 있고 감사한 영화예요. 대사 한마디 없더라도 무언의 몸짓으로 많은 걸 표현하려고 노력했어요. 그게 잘 전달됐을지 모르겠지만 그렇습니다.
Q: 감독님께서 불교 철학에 관심이 많으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저는 인연과 관계된 ‘찰나’와 ‘겁’이라는 말을 좋아하는데, 감독님에게 인상적이거나 좋아하는 불교 용어가 있다면 소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서보형: 너무 많긴 한데요. 일단 ‘불일불이’(不一不二)라는 말을 좋아해서 영화의 영어 제목으로 사용했어요. 이 영화를 개봉하는 과정에서 제일 많이 생각나는 단어는 ‘시절인연’이예요. 인연도 때가 있다는 얘기죠. 제가 미술을 전공했고 이 영화는 어떤 미술론적 방법론으로 만든 영화이기 때문에 저는 개개인을 만나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이디어를 상당히 많이 얻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용훈 배우를 못 만났으면 검은 옷이라는 인물은 이 영화에 없는 거죠. 그리고 지원 배우가 니스에서 찍은 그 사진이 없었다면 이 영화의 내용은 완전히 또 달라졌겠죠. 그러니까 이 모든 것들이 참 희한하게 시절인연이라는 생각을 요즘 특히 많이 하고 있어요. 너무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류승원: 벌써 마칠 시간이네요. 마지막으로 네 분께 현재 벗어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 그리고 차기작과 관련된 일정이 있으시다면 짧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성용훈: 저는 나태에서 벗어나자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한 번씩 삶에 대한 희망을 품다가도 지칠 때가 있잖아요. 이런저런 스트레스와 여러 사유에 의해서요. 근데 그때마다 좀 더 분발해야 할 것을 놓치게 되는 순간들이 있더라고요. 그럴 때마다 최대한 나태에서 벗어나자는 생각을 해요. 차기작은 영화 촬영은 지금 다른 건 없고요, 수성아트피아에서 매달 마지막 주 화요일 1시부터 2시까지 연극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관객과의 시간도 가지고 또 제가 작품을 독백으로 시연을 해 보이는 그런 시간이 준비돼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위지원: 글쎄요. 벗어나고 싶은 게 뭘까요? 저는 수많은 GV로 누적된 피로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그게 정말 솔직한 마음이고요. 그래서 에너지를 충전하는 시간을 갖고 싶어요. 그리고 차기작은 일단은 에너지가 충전된 다음에 넥스트 스텝으로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오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임호준: 위지원 배우님 말씀을 듣고 나니까 저희가 의도치 않게 많이 괴롭힌 것 같네요. 술자리가 정말 많았거든요. 아무튼 저는 최근에 데이비드 호킨스의 『놓아버림』이라는 책을 보고 있는데 그 책을 보면 이런 얘기를 해요. 항복이라는 말이 불교에서도 많이 쓰는 단어라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항복한다고 할 때 그 항복. 그러니까 저의 어떤 개인적인 감정 상태나 인간관계에서의 고충이나 갈등에 대해서 항복한다는 거죠. 항복을 함으로써 좀 더 지혜롭게 살 수 있는 여러 가지 방향들이 생길 수 있다는 그런 이론을 펴는 책인데 그런 걸 보면서 이제 좀 인간관계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람을 안 만나고 싶다는 게 아니고요. 사람을 만나면서 어떤 상황이나 갈등들이 생길 수 있기 마련인데 거기서 좀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차기작은 장편 몇 작품이 있는데 저는 잠깐 나오지만 <로기완>이라는 작품이 지금 넷플릭스 상영 중입니다. 꼭 한 번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서보형: 벗어나고 싶은 건 얘기를 많이 했으니까, 제가 마무리로 시절인연 이야기를 잠깐 하고 싶은데요.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는 비디오 가게가 있었거든요. 어느 날 <아비정전>과 <그랑블루>를 빌렸어요. 그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도 모르고 감독이 누군지도 모르고요. 근데 그 두 편을 연달아 보고서 제가 충격을 받았어요. 나는 평생 영화를 하면서 살다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그때 했었거든요. 근데 그게 생각해 보면 너무 우연적인 거고 말하자면 영화와 저 사이의 시절인연이었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그래서 여러분들도 영화감독이 되실 분들이 있으면 더 좋겠지만 그것과 관계없이 저희 영화가 여러분들에게 짙은 인연이 될 수 있는 그런 영화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차기작은 작년에 부천영화제 지원으로 찍은 단편 영화 <장례복>이 있고, 올해는 여기 계신 배우들과 또 작은 영화를 하나 찍어서 장편 옴니버스로 묶어서 손볼 예정에 있습니다. 오늘 와 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류승원: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벗어날 탈 脫> 관객수 천 명 돌파 축하드립니다. 그럼 오늘 <벗어날 탈 脫> GV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와 주신 관객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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