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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불문! 대구독립영화

무엇이 영화인지 좀 더 생각해봐야겠지만 영화인 것만은 분명함 #3 - 마지막화

장르 불문! 대구독립영화

오오극장은 대구 유일의 독립영화전용관입니다.
대구독립영화의 다양한 방향을 모색하고 독립영화를 사랑하는 대구 관객들과 호흡하기 위하여,
새로운 시선으로 대구독립영화에 접근하는 장, <장르 불문! 대구독립영화>를 연재합니다.
대구독립영화를 주제로 소설, 칼럼, 에세이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을 소개합니다.
두 번째로, 대학생 이라진님의 대구단편영화제를 다니며 생각한 것들에 대한 글을 선보입니다. 
매주 수요일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무엇이 영화인지 좀 더 생각해봐야겠지만 영화인 것만은 분명함 #3 - 마지막화

 

사소한 뒷이야기: 유령 지망생의 편지

살라도르 엘리손도 작가님께.

편지가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멕시코시티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은 한참 전에 들었습니다. 제가 그동안 작가님께 편지를 쓰지 않는 이유는 시간을 아끼려는 게 아니라 작가님의 눈을 아끼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대구를 떠나시자마자 연락이 안 된다는 금동현의 메시지를 보고 이렇게 편지를 적습니다. 저는 사이비 청년단원 아르바이트를 관두고 목욕탕 매점 직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혹시 원고(라 부르기도 민망한 일기)는 읽어보셨나요? 바실리 슉신은 작업 메모장에 단편 작가는 평생 한 권의 책을 쓰고, 그 책에 대한 평가는 작가 사후에 시작된다는 문구를 남겼습니다. 단편을 쓰진 않았지만 살아 있으나 죽으나 비참한 평가를 피할 수 없다면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게 그나마 효과적인 해결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비참함으로부터 도망치기! 진지하게 말하는 제게 금동현은 이런 말을 들려주더군요. 라진 씨, 노트에 메모도 거의 하지 않으며 친구들과의 편지를 모조리 불태우고 보내드릴 개인적인 기록이 없다 단언한 패트릭 화이트는 정작 개인적인 기록을 산더미같이 남겼다고 하네요. 이게 어떤 뜻인지 모르시겠어요? 라진 씨는 이미 강을 건넜습니다. 그리고 다신 돌아오지 못하겠죠. 현실을 받아들이세요! 19817월 멕시코 대학잡지에 실린 리지아 파군데스 텔레스의 기사 제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글쓰기는 두려움을 이기는 것. 저는 의뢰를 받은 후 점차 모든 걸 버리면서 글을 썼습니다. 그럼 나는 어떻게 된 걸까, 애초에 쓴다는 건 무얼 부르는 행위일까, 두려움조차 버린다면 내게 남는 건 무엇일까? 이런 생각도 하면서요. 작가님은 시인이 언어, 이미지 또는 감각을 통해 순간적으로 영원을 마주하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럼 작가님이 말하는 영화에 대한 것은 무엇인가요? 아마 답을 들어도 영화인 것만은 분명함에 지나지 않겠지요. 저는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순간 이후에 그 순간을 포착하여 담아내는 연속적인 움직임이 영화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발생해버린 이물질의 침범을 허용하면서 순간을 다시 부르는 것. 이탈을 망설이지 않는 것. 생동하는 물질의 이동을 구경하며 내버려 두는 것. 계산된 거리를 벗어나도록 만드는 충돌이 포착한 이미지를 멀리서 응시할 때면 저는 누군가를 꼭 만났을 것 같아요. 작가님이 계시지 않는 곳에서 작가님을 떠올려도 작가님과 함께 있는 순간에는 작가님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어긋난 만남을 상상하면, 현실은 꿈이고 꿈이 현실이고 제가 할 일은 이 꿈을 그대로 옮기는 것밖에 없습니다. 저는 옮기는 것 그 자체에 아주 관심이 많고 영화는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으며 어쩌면 모든 건 옮김으로 발생하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옮기면 될 뿐이라고 응답 없는 물음을 옮기다 보면 이 기록이 지시하는 장소를 통과할 것 같고,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공간에는 우리가 부르기만 한다면 이야기될 언어와 이미지의 유령이 반드시 불가해한 흔들림을 들려줄 것 같아요. 몇 번이고 사멸 당한 유령이 있다 해도 가라앉은 묘지를 맴돌며 그들이 나오기만을 기다릴 겁니다. 몸짓의 진동을 잡아당기는 유령이 되어 현실을 삼키고 허구를 뱉으며 꿈꾸기. 저는 이런 옮김이 너무 재밌고 좋습니다. 작가님은 어떠실지 모르겠지만요(딱히 생각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 금동현은 정말 좋은 편집인이었습니다. 저는 계속되는 마감 기한 연장과 뒤늦은 원고 수정으로 그를 끊임없이 괴롭혔으며 저녁이 되면 제 부두 인형을 신천 희망잠수교에 매달아 바늘로 찌르고 있는 금동현의 모습을 쉽게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가타리와 들뢰즈는 혼돈이 친구이자 적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혼돈을 공유하며 눈물 나는 우정을 경험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원고를 보내면서 이 말을 전하자, 금동현은 즐거워 보인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정중한 말투로 우리가 언제 우정을 공유했는지 묻더군요. 약간의 웃음기도 없이. 말이 길어졌네요. 끝으로 작가님이 정말 궁금하다는 말씀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하지만 작가님을 만나고 싶진 않아요. 단지 그런 만남을 상상하는 일로도 즐거우니까요. 작가님이 쓰신 소설을 읽은 적은 없지만 단편 영화는 볼 수 있었고, 작가님은 정말 흥미로운 시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저는 스물네 살이고 아마 언젠가는 버려진 유령들을 만날 겁니다.

그럼 이만 총총.

 

이라진

 

 

 

 

 

 

 

이 글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데이비드 린치, 정신머리를 유지하다의 형식과 무엇이 종말인지 좀 더 생각해봐야겠지만 종말인 것만은 분명한의 제목을 빌렸고, 기시 마사히코 망고와 수류탄,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거의 떠나온 상태에서 떠나오기, 조르조 아감벤 벌거벗음, 프랑스아 보비에/아디나 메이 무빙 이미지 전시하기: 다시 본 역사, 케일럽 켈리 갤러리 사운드, 백남준 백남준: 말에서 크리스토까지, 이승훈 현대시의 종말과 미학, 로베르토 볼라뇨 SF의 유령, 프랑코 베라르디 비포미래 이후, 발레리아 루이셀리 무중력의 사람들, 슬라보예 지젝 까다로운 주체, 미셸 드 세르토 일상의 발명, 안토니오 타부키 사람들이 가득한 트렁크, Jacques Jouet Poèmes de métro, Rafael Orozco Ramírez Imaging Literature: Photography And Film In Salvador Elizondo And Roberto Bolano를 참고했으며 만약 이 글은 전혀 참고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면 아마 그 생각이 맞을 것이다. 그리고 일기의 내용과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허구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내 일기는 진실이다.

 

 

 

-글 이라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