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손> 관객과의 대화 기록 2024.10.13.
참석 오정민 감독
진행 최은규 대구단편영화제 프로그램팀장
기록 김가율
최은규: 안녕하세요? 저는 대구단편영화제 프로그램팀장 최은규라고 합니다. 그럼, 감독님 인사 부탁드립니다.
오정민: 네 안녕하세요. 저는 <파묘>을 잇는 흥행작이자 <베테랑2>의 가장 강력한 경쟁작 영화 <장손> 감독 오정민입니다.(웃음) 반갑습니다. <장손>이 또 대구 영화잖아요. 그래서 이 공간에서 상영한다는 게 저한테는 굉장히 큰 의미가 있는데요. 오늘 이렇게 많은 분과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영화라는 건 사실 관객분들께서 만들어주시는 거라고 생각해요. 관객분들과 많은 대화 나눠봤으면 좋겠습니다.
최은규: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오정민 감독님이 원래 대구 출신이시고, 부모님도 지금 대구에 계시잖아요. 영화 개봉을 하고 GV를 많이 하셨을 텐데, 물론 모든 행사가 다 소중하시겠지만, 대구에서 하는 행사는 조금 더 각별하지 않으실까 싶은데요. 소감 한번 부탁드립니다.
오정민: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저한테는 특별한 의미가 있어요. 이 영화에 대한 정확한 해석들 그리고 이 공간의 분위기를 가장 잘 이해하실 수 있는 분들이라고 생각되어서 감사하기도 하고요. 사실은 외국이나 혹은 서울에서 상영을 하면 사투리를 거의 못 알아듣겠다는 분들도 계셔서 한글 자막을 깔아달라는 얘기도 들었어요. 근데 여기 계신 분들은 아마 다 이해를 하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최은규: <장손>을 굉장히 오래 작업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오랜 시간 동안 촬영이 이어지면서 배우들 스태프들과도 되게 끈끈해지셨을 것 같은데 어떠셨나요?
오정민: 그렇죠. 진짜 가족처럼 느껴졌었어요. 합천에서 한 6개월 동안 합숙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요. 여름에 사람들이 복닥거리면서 함께 막 웃으면서 지내다가 점점 한 명씩 떠나니까 쓸쓸해지기도 하고요. 그리고 날씨가 추워지면 현장도 조용해지고 그런 현장의 분위기와 영화의 분위기가 되게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Q: 할머니 장례식 때 아드님께서 가족 장례 회사에 대한 불만 같은 걸 표시하는 그런 장면이 있는데 저는 뭐 때문에 저러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할아버님이 산으로 올라가시는 장면을 어떤 의도로 넣으셨는지, 장손이 할아버지한테 통장을 받고 난 뒤 차에서 햇빛이 너무 강해서 손으로 가리는 장면은 죄책감을 표현한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오정민: 네, 감사합니다. 장례식에서 태근이 주사 아닌 어떤 행동을 하는데, 그전에 보면 태근은 상주답지 않게 무슨 동창회 하듯 술을 마시고 있잖아요. 성진은 그것을 이상하게 쳐다보고 있고요. 근데 태근 또한 슬픔을 가지고 있고, 어쨌거나 제대로 되지 않은 음식이 상에 올라가 있는 거에 대해서 어떤 불만을 표출하죠. 저는 장례식에서 울음이 꼭 슬픔이 아닌 어떤 죄책감일 수도 있고 회한일 수도 있고 분노일 수도 있는데 그 울음의 결이 다양했으면 좋겠다는 연출적인 생각은 있었습니다. 그리고 엔딩에 대해서는 사실 제가 굳이 말씀드리는 게 맞는지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그거는 오로지 관객분들의 해석 쪽에 가까운 것 같아서요. 하지만 저한테 중요했던 것은 할아버지는 집으로 가야 할지 산으로 가야 할지에서 결국 산을 선택했고, 치매로 인해 길을 잃는 것을 프레임 아웃으로 할아버지가 화면에서 나가려고 할 때 카메라는 어떻게든 그것을 막아보려고 노력한다는 것과 그 충돌과 긴장감이 담겼으면 좋겠다 정도의 연출적인 의도는 있었습니다. 그리고 택시 얘기였나요? 그 부분이야말로 제가 굳이 말할 필요가 있을까요? 죄책감이라고 생각하셔도 좋고 누군가는 그걸 보고 돈 보고 웃는다고 얘기하시던데 그거야말로 진짜 관객분들 믿고 싶은 대로 믿어도 되는 거 아닌가. 사실 정답은 없으니까 다양하게 느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Q: 가족들이 다 같이 모여서 돈 합산하는 장면에서 나오는 대사들이 다 시나리오에 잡혀 있던 대사인지 아니면 애드립이 섞여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오정민: 저는 애드립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100% 다 시나리오에 있었고 그거를 어떻게 하면 즉흥적이고 자연스럽게 보일 수 있을까에 대한 노력을 저희가 열심히 했던 것뿐이고 실제로 애드립은 없습니다. 촬영 전날에 모여서 연습을 많이 하고 필요 없는 부분은 걷어내기도 하고 또 대사 순서를 바꾸기도 하고 그래서 현장에서 되게 수월하게 찍겠구나 했는데 촬영이 한 5시간 걸리더라고요. 그래서 배우들의 공이 되게 컸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Q: 왜 하필 두부 공장이었나요?
오정민: 왜 두부인가? 두부라는 음식이 굉장히 아시아적인 음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두부를 만드는 과정이 굉장히 고되거든요. 두부를 불리고 끓이고 갈고, 그리고 비지를 걷어내고 간수를 쳐서 수많은 간숫물이 빠져나가면 아주 소량의 두부가 남습니다. 그게 저는 유교 가부장제의 대한민국 가정이라고 생각했고요. 근데 그렇게 어렵게 만들어진 그 두부가 너무나 쉽게 잘 부서져 버리고 너무 쉽게 잘 상해버립니다. 그리고 냄새도 굉장히 고약하고요. 그게 또 우리네 가족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두부라는 어떤 생산 수단을 결정하게 된 것 같습니다.
Q: 영화가 너무 대구 경북 지방에 있을 법한, 아니면 농촌 쪽에 있을 법한 이야기인데 전국에 다니면서 GV를 하셨다면 다른 도시의 다른 환경의 사람들은 어느 정도 공감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오정민: 어쨌거나 보편적인 가족 이야기고 이런 이야기가 대구의 특수한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에 이해는 잘해 주시는 것 같아요. 하지만 대구 사투리를 쓰고 대구 사람의 뭐랄까요. 멘탈리티랄까요? 어떤 태도랄까요? 그런 것들은 또 다르잖아요. 그리고 대사에서 묻어나는 서브 텍스트들이 다 달라서 그런 지점은 오히려 우리들만이 더 즐기고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정도의 인상은 있는 것 같아요. 저 또한 어떤 특수한 가족이 아니라 이 영화가 마치 거울처럼 자기네 가족을 비출 수 있는 영화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기획했거든요. 그리고 한국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어떤 해악의 정서는 이해가 잘 안되지만 가족 영화의 특수성상 그냥 보통 자기네 가족처럼 이해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Q: 영화 재밌게 잘 봤고요. 저는 일단 영화 끝나면서 제일 궁금했던 거는 성진이가 그 돈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고모에 대한 죄책감이 굉장할 것 같은데 그런 거는 어떻게 설정을 해 주셨는지 궁금하고요. 조금 새롭게 느껴졌던 게 이제 장손들이 장손이라는 지위를 되게 거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장손이라는 지위를 물려주기 싫어하는 그런 면이 우리가 공감하고 느껴왔던 가정의 가족들과는 또 다른 숨겨진 면이 느껴졌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각각 장손들에게는 역사적인 트라우마가 있잖아요. 그 트라우마를 설정하실 때는 참고하신 레퍼런스 같은 게 있으신지 궁금했습니다.
오정민: 좋은 질문 감사합니다. 첫 번째 질문은 모든 GV에서 나오는 질문입니다. 마지막에 성진이가 할아버지로부터 받은 그 통장에는 아주 많은 돈이 들어있죠. 저는 이 영화는 주장과 진술이 있을 뿐 진실은 담겨 있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게 과연 고모의 돈일지 아닐지는 확신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궁금한 게 왜 큰고모 혜숙의 진술은 신뢰하면서 고모가 돈을 타갔다는 엄마 수희의 진술에 대해서는 아무도 신뢰하지 않는 건지. 약간 언더도그 아닌가? 약자를 믿는 어떤 심리 아닌가? 하는 생각과, 고모의 돈이 들어가 있을지도 모르는 그 돈을 받아들였을 때의 당혹감. 그리고 이게 집안의 어떤 명령도 있는 거겠죠. 네가 장손으로서 집안을 어떻게든 이어나가라는 의미가 있는 그 돈이라는 유혹에 과연 넘어가지 않을 것인지라는 짓궂은 질문을 던져 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저는 가부장제를 타파해야 합니다! 이런 구호를 담은 영화를 굳이 만들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여기 있는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얘기잖아요. 그 가부장제가 그렇게 쉽게 부서질 수 있고 소멸될 수 있는가에 대한 어떤 자기성찰적인 태도가 있었고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의 질문을 던지는 쪽에 조금 더 가까웠던 것 같아요. 그리고 레퍼런스는 사실 제 입으로 말하기엔 부끄럽지만, 너무 많죠. 대만의 ‘허우 샤오시엔’이나 ‘에드워드 양’의 영화라든지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라든지 한국 감독으로 치면 ‘임권택’ 감독님이나 <학생부군신위>를 만든 ‘박철수’ 감독님도 계시고요. 저는 이 영화는 제 개인적인 개성 넘치는 영화라기보다는 수많은 선배 감독님의 영화를 어떤 식으로 제가 재해석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Q: <장손>이 선배 감독님들의 영화를 계승하는 의미의 영화라고 하셨으면 차기작은 전혀 다른 장르를 하고 싶다고 말씀 하신 걸 봤었는데 그럼 다음 차기작을 진짜로 감독님이 하고 싶었던 색깔의 영화일지 궁금합니다.
오정민: <장손> 또한 제가 아주 찍고 싶었던 영화였어요. 뭐 인생 선배님도 많으신데 이런 말 좀 그렇지만 제가 눈을 감기 전에 이 영화가 제 첫 영화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고 떠날 수 있을 만큼 이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리고 두 번째 영화는 어쨌거나 <장손>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거든요. 그렇더라도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예를 들어 ‘홍상수’ 감독을 너무 존경하지만 자기 언어를 가져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보다는 저는 매번 다른 스타일의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김지훈’ 감독이든 아니면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든 되게 다양한 영화를 하잖아요.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영화가 뭔지는 저도 아직 잘 몰라서 매번 다른 영화를 하고 싶고 더 자주 찍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최은규: 장례식장에서 둘째 따님이 뒤늦게 와서 다 같이 엉엉 우는데 언니가 와서 곡소리는 그렇게 내는 게 아니라 하면서 시범을 보이잖아요. 이런 지점들이 감정적인 느낌 보다는 멀리 좀 분리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어요. 어색하게 엉엉 울어야 하는, 이게 전통이라는 게 웃기기도 하고 좀 특별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오정민: 이 영화를 만들 때는 기본적으로 이제 2차원의 회화를 만든다기보다는 3차원의 조각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보는 사람마다 되게 다양하게 느꼈으면 좋겠고, 누군가한테는 슬프지만 누군가한테는 굉장히 우스꽝스러운 상황들, 그런 것들은 특히 장례식에서 많이 이루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Q: 성진이 고모한테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은 그다음 장면에서 보면 식탁에 가족들이 모여 있는데 불이 깜박깜박하잖아요. 그게 어떤 의도가 있는 것인가요?
오정민: 명암과 같이 빛이 있고 없고에 대한 어떤 영화적인 구분을 좀 하고 싶었어요. 영화에서 낮의 온도와 밤의 온도는 달라지고, 그리고 점멸하면서 집안의 위기가 고조되죠. 전등의 불이 꺼졌다가 켜지면서 우리가 안 보였던 것들을 보게 되고, 등이 점멸하고 흔들리면서 과거의 이야기들이 된다는 그런 큰 설정들 정도는 있었습니다.
Q: 좀 생뚱맞고 웃긴 질문이긴 한데요. 왜 감독님은 할머니가 먼저 돌아가신 걸로 설정하셨나요?
오정민: 손숙 선생님께서 본인이 이 영화를 선택하신 이유 중 하나가 빨리 찍고 빨리 촬영장을 뜰 수 있을 것 같아서 선택했다고 농담하시는데요. 사실 전혀 웃긴 질문은 아니고 되게 중요한 지점 중 하나인 것 같아요. 만약 할머니가 아니라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면 집안의 분위기가 어떻게 변했을까? 라는 질문이 저한테는 남거든요. 이 집안을 영속시켰던 건 족보라든지 할아버지가 그렇게 지키고자 했던 유교 가부장제가 아니라 어쩌면 할머니의 사랑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할머니가 사라지면서 이 집안에서 위태위태하게 유지되어 있던 것들이 무너지고 가족들의 본색이 드러난다. 이게 큰 기획 의도 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Q: 할머니께서 에어컨을 계속 안 켜다가 손주가 집에 오니까 에어컨 켜라고 얘기하는 장면이 있잖아요. 저는 감독님도 집에서 그런 대접을 받으면서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어떠셨나요?
오정민: 이 영화처럼은 아니지만 저도 대한민국 남성으로서 혜택은 받고 자랐죠. 그에 따른 책임도 져야 하는 위치에 있기도 했고요. 그래서 저는 어쩌면 대한민국 가부장제 가족에 대해서 솔직하게 해부할 수 있는 당사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만약에 여성 감독으로서 만들었다면 좀 더 분노나 뜨거운 감정들이 섞인 영화가 나왔을 것이고 물론 그것 또한 매력이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그렇게 얘기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차갑게 해부하는 영화를 만드는 게 저한테는 좀 더 가치 있고 솔직한 영화가 될 거로 생각했고요. 어떤 가족주의에 함몰되거나 따뜻한 가족 영화가 아니라, 물론 그렇게 보시는 분들도 있지만 저한테는 좀 솔직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게 컸습니다.
Q: 저는 영화를 보면서 영화 <대부>가 생각이 났어요. 가족 갈등에 대한 스토리도 비슷한 것 같고요. <장손>도 <대부>처럼 몇 년 뒤에 <장손2>로 나와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오정민: 감사합니다. 농담이 아니라 <대부> 또한 저한테는 레퍼런스였던 것 같아요. 되게 고전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대부>의 마이클 또한 집안의 어떤 의무를 벗어나고 싶어 노력하지만 어쨌거나 집안에 영속되는 이야기잖아요. <장손> 또한 성진이 장손의 의무를 다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결국에는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위치에 있다는 운명론적인 그런 지점이 되게 비슷하기도 하고요. 저 또한 그런 클래식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습니다.
Q: 고모와 성진이 병원에서 태근이가 그런 것이 아니라는 말과 함께 고모가 경직된 표정을 짓는데 고모가 불을 질렀다는 암묵적인 표현인가요? 그리고 성진이가 병원에 들고 간 빨간 꽃에도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오정민: 이 영화에서는 믿기 싫으면 다 나빠 보인다, 사람들은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성진 또한 어쩌면 아버지가 범인이라고 믿고 싶었던 것 아닐까? 그리고 불을 지른 범인이 누구냐 이런 질문에 제가 굳이 얘기를 안 해도 관객들은 아실 거로 생각하고요. 고모와 성진의 대화를 보면 각자 말은 친절한데, 말에 비수들이 꽂혀 있잖아요. 되게 가식적인 태도를 취하는 성진이와 그걸 다 알고 있는 고모와의 대화인데, 성진은 부모처럼 생각한다고 하지만 알레르기도 모르고 꽃을 가져간 것처럼 사실은 병원에 자주 가지도 않았을 거라는 것을 알 수 있죠. 가깝다고 생각하지만 이게 얼마나 먼 관계인가라는 생각하게 만드는 장면이라 생각합니다.
Q: 계절에 대해서 질문을 하나 하고 싶은데 여름에서 시작해서 겨울로 끝난단 말이죠. 저는 이 영화가 좀 서늘하게 다가온 게 마지막에 그 계절 감각 때문에 그렇게 다가온 것도 있는데요. 감독님 의도는 어땠는지 궁금했습니다.
오정민: 왜 봄을 담지 않았냐는 질문도 많으신 것 같아요. 가족이 가장 뜨거웠던 순간, 가장 행복했던 순간에서 가장 차갑고 쓰러져가는 그 마지막으로 끝난다면 어떨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족이 과연 사라질까? 한다면 저는 그렇지는 않을 것 같아요. 새롭게 다시 늘봄이가 태어나듯 새롭게 가족의 각자의 봄을 관객들께서 그려 나가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고요. 하지만 이런 가족을 굳이 붙들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무엇인지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는 딴따라인 제가 아니라 관객분들께서 각자의 답을 찾아나가 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최은규: 예전 감독님이 하셨던 말 중에 기억에 남는 게 있는데요. 영화가 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은 결국 그 사람들을 웃고 울리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이 <장손>이라는 영화의 기획부터 시나리오, 개봉까지 다 포함해서 가장 큰 웃음과 가장 큰 울음이 있었다면 어떤 순간들이 기억나시는지 그걸 한번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오정민: 영화는 누군가는 예술로 불려주지만, 저는 영화 따위는 없어져도 이 세상에 아무런 해가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만큼 단순히 오락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오락을 누군가는 예술로 만들고 누군가는 하찮은 상품으로 만들 뿐이라고 생각이 드는데, 제가 좋아하는 영화를 계속하고 싶어서 하는 것뿐이지 어떤 우월 의식을 느끼거나 어떤 예술이라고 굳이 칭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계속하고 싶어서 아주 오랜 시간을 좀 견뎠어요. 그래서 이 영화가 공개되면 어떤 평가를 받을 거야 그리고 날 알아봐 줄 거야 그런 되게 속물적인 야심이랄까요? 그런 것도 있었던 건 사실인데 영화제에서 상영하고 상도 받고 했을 때 생각보다 기쁘지는 않더라고요. 그런 거에 일희일비해서는 안 되고 또 받아봤자 제 욕심은 채워지지 않고요. 제 머리와 어깨 안에는 지금 2톤짜리 무게가 있는데 상 하나 받아서 100kg 빠져봤자 저한테는 1.9톤이 남아 있는 거잖아요. 이거로는 나의 욕심을 채울 수가 없겠구나, 그러면 이 성과를 바라지 말고 하나하나 과정을 즐기자고 생각했고요. 제가 이렇게 GV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언제 또 있을지 모르잖아요. 그냥 이거 하나하나에 감사하게 느끼고 하루하루를 살아가자. 이번에 이런 과정을 겪으니까, 나중에 혹여나 천만 영화를 하더라도 다음 날 집에서 설거지해야 하잖아요. 그냥 이런 일상생활에서 행복감을 찾고 즐기고 살아 나가야겠다, 너무 욕심 부리지 말자, 하나하나에 감사하면서 살자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Q: 갑자기 궁금한데, 지금 ‘한강’ 작가님이 노벨상을 타고 난 다음에 애들한테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이제 강조할 수 있는 근거가 생긴 것 같더라고요. 감독님께서 객관적인 시각도 가지고 계신 것 같고, 말씀도 잘하시는 것 같은데 어떤 영향으로 지금의 감독님으로 만들어졌는지 궁금해요.
오정민: 감사합니다. ‘한강’ 작가님 정말 대단한 일을 하셨죠. 저 또한 고등학교 때는 소설가가 되고 싶었어요. 제가 국문학과 나왔거든요. 저는 ‘이청준’ 작가님처럼 되게 웃음 깊은 작가가 되고 싶었어요. 하지만 제가 쓰는 글보다 ‘양조위’의 눈빛 하나가 더 신비롭고 더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고 난 뒤에는 글보다는 배우라는 직업과 함께하는 연출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졌고요. 하다 보니 관계에 관한 이야기나 가족에 관한 이야기에 좀 천착하고 있는 것 같지만, 제 주제는 매번 변할 것 같아요. 어떤 신화화된 영화라는 건 없다고 말씀드린 것뿐, 저에게는 영화가 전부거든요. 그래서 하찮은 거지만 계속 이 영화를 해나가서 사람들한테 티켓 값이 안 아까운 영화를 계속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최은규: 네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GV 하신 소감 그리고 앞으로 계획이 있으면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오정민: 조금 더 일찍 대구에서 관객분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조금 늦어졌던 것 같아요. 하지만 나중에 또 조만간 이런 기회에 인사드릴 거고요. <장손>은 가능한 한 길게 상영을 해서 여러분들과 계속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오늘 많은 관심과 응원 감사드립니다.
최은규: 오늘 참 깊고 재밌는 이야기 많이 나눠주신 오정민 감독님께 다시 한 번 큰 박수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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