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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V 모먼트

<부모 바보> 이종수 감독 / 2025.02.02.

 

<부모 바보> 관객과의 대화 기록 2025.02.02.

 

참석 이종수 감독

진행 김건우 관객프로그래머

기록 김가율

 

 

 

김건우: 안녕하세요. 오늘 <부모 바보> GV 진행을 맡은 관객 프로그래머 김건우라고 합니다. 감독님. <부모 바보>를 보신 대구 관객분들께 인사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종수: 안녕하세요. 영화 <부모 바보> 연출을 한 이종수라고 합니다. 연휴 막바지에 이렇게 많이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김건우: <부모 바보>라는 영화를 처음 보신 분도 있고 아마 여러 번 보신 분도 있으실 텐데 감독님께서 이 영화를 어떻게 만들게 되었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이종수: 어떻게 만든 영화일까요? 힘들게 만들었어요. 힘들게 만들었고 제가 나이를 많이 먹은 사람은 아니지만 올해 30대 중반인데요. 20대를 지나오면서 느꼈던 것들이나, 잔존해 있던 감정들을 한번 정리하는 느낌으로 영화를 만들어 봤습니다.

 

김건우: 이 영화가 초저예산으로 만든 영화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부모 바보> 배우 캐스팅이나 혹은 프로덕션을 했던 그 과정이 궁금해졌는데 촬영 준비 과정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이종수: 제가 단편 영화 워크숍을 들으면서 <부모 바보>를 찍기 전에 짤막한 습작을 좀 만들어 봤어요. 제가 원래 영화 전공이 아니고 현대미술을 전공했는데요. 영화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짧은 습작을 많이 찍어봤는데 제가 말을 짧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긴 호흡을 가진 장편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단편 영화 워크숍 수업을 같이 듣는 친구들한테 도움을 받아서 장편 영화를 만들게 되었고요. 배우들 같은 경우는 이것도 말하면 되게 긴데 제가 말을 짧게 못 하는 사람이라(웃음). 어쨌든 둘 다 힘들게 캐스팅했습니다. 둘 다 연기를 그만두려고 했던 시기였고 일단은 먼저 소개를 드리자면 ‘진현 역할 맡으신 윤혁진 배우님은 제가 ‘필름 메이커스 사이트 말고 좀 오래된 다른 사이트가 있어요. 거기 우연히 들어가 봤다가 연기가 굉장히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그 당시 <부모 바보>라는 이야기는 트리트먼트 형태로만 존재했었는데 윤혁진 배우의 말투나 연기 습관 같은 것들을 많이 참고를 해서 ‘진현이라는 캐릭터를 만들게 됐어요. 그러고 나서 윤혁진 배우한테 연락을 했습니다. ‘당신을 위한 시나리오를 썼다 그랬더니 ‘다시 이런 기회가 안 올 거다. 너무 영광이다. 하면서 흔쾌히 허락을 했죠. 그때 윤혁진 배우는 연기를 좀 쉬고 다른 일을 해볼까? 하던 찰나였기에 되게 특별한 경험이었다고 하고요. 그리고 ‘영진 역할을 맡은 안은수 배우님 같은 경우도 그 당시 연기를 아예 그만두려고 하고 있었대요. 근데 제가 필름 메이커스 78페이지에 딱 봤더니 굉장히 마음에 드는 배우가 있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두 배우가 저랑 같이하게 되었어요.

 



김건우: 영화의 제목이 조금 특이하죠. 어떻게 해서 <부모 바보>라는 영화의 이름을 짓게 되었는지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종수: 제가 아이스 브레이킹을 좀 하자면 객석이 엄청 가깝네요. 여기 또 부모님들도 계시는 것 같아서 조금 조심스럽긴 한데요. <부모 바보>라는 제목은 아들 바보, 딸 바보 이런 사랑스러운 느낌이 아닙니다. 제 나름대로 겪은 것들로 만들었고요. 부모님 바보 같은 이야기예요. 사실 처음에는 수위가 더 센 제목을 생각했어요. 근데 독립영화라고 해서 자극적인 소재를 다루는 거는 함정이라는 생각과 벽에 쓰여 있는 낙서처럼 좀 귀엽게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내가 우리 부모님 바보라고 했는데 누군가가 여기에 동조를 하면 기분이 나쁘거든요. 그 이상한 뗄 수 없는 윤리, 유교적인 부분을 많이 생각할 수 있겠다. 그래서 어떤 의미가 정확하게 있는 거라기보다는 그냥 낙서 같은 제목입니다.

 

김건우: 낙서 같은 느낌으로 제목을 지었다고 하셨는데 그 말을 딱 듣고 떠올린 게 영화의 타이틀 카드가 나오는 장면이 있죠. 그러니까 ‘영진이라는 캐릭터가 피아노에 엎드려 있고 그 뒷모습으로 ‘부모 바보’라는 타이틀이 계속 반복해서 적히잖아요. 그 장면은 어떻게 구성하게 되셨나요?

 

이종수: 그 장면은 우선, 제가 맨 처음에는 ‘부모 바보라는 타이틀을 손으로 좀 써보고 싶었어요. 이렇게 써볼까, 저렇게 써볼까? 여러 가지 글씨체로 실험을 해보다가 뭔가 마음의 평안을 찾고 싶을 때 한자로 ‘평안’ 이런 걸 쓰잖아요. 서예처럼요. 그거처럼 수행하는 기분이 들어서 그러면 이걸 타이틀 카드로 한번 써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이게 계속 같은 글씨를 쓰다 보면 지금 보고 있는 게 내가 알고 있는 문자가 맞나? 이런 생각이 들면서 게슈탈트 붕괴 현상이 막 일어나잖아요. 그 ‘부모 바보’라는 말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잘 보이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한 흔적을 이런 식으로 보여줬던 것 같아요. 낙서 같은, 주절거림 같은 영화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Q: 이 영화 다음에 나온 작품이 <인서트>이고 또 지금 만드시는 작품이 다큐로 알고 있는데 다큐로 장르를 바꿔보신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이종수: 다큐멘터리 같은 경우는 제가 습작을 찍기 전에 21년도에 이미 시작을 했었어요. 그때 저수지 앞에 사는 자연인들을 찍고 있었는데 그거를 찍으면서 생각난 트리트먼트가 <인서트>로 옮겨갔거든요. 그래서 그 다큐멘터리는 지금도 계속 찍고 있고요. 사실 다큐멘터리랑 극영화의 경계들이 요즘에 많이 무너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인서트><부모 바보>도 운 좋게 영화제에서 공개가 돼서 개봉까지 하게 되었지만, 어느 정도 실험과 연습 같은 것들을 많이 해야 된다고 생각을 해요. 영화를 많이 찍어볼수록 좋은 것 같고 그래서 그런 부분에서 실험을 좀 할 것 같습니다. 그냥 다큐멘터리라기보다는 극적인 요소가 들어가기도 할 것 같고 여러 가지 고민 중입니다.

 

김건우: 시간상 조금 이르긴 한데 말 나온 김에 다음에 나오는 영화 소개를 해 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이종수: <인서트>라는 영화를 제가 <부모 바보>를 찍고 1년 후에 같은 날짜에 촬영을 했습니다.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 뽑히게 되었는데 올해 필름다빈이랑 같이 개봉을 해서 오오극장에 다시 오겠습니다(웃음). 그리고 다큐멘터리 같은 경우는 이제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지금 작업 중이고요. 근데 어떻게 나올지는 저도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작업을 해봐야 알 것 같아요.

 

Q: ‘진현이 게임을 하고 그 옆에서 영진이 구경을 하는 장면에서 독립영화에 관한 얘기를 하잖아요. 감독님의 의견이 들어간 걸까요?

 

이종수: 요즘 독립영화는 다 똑같고 뭐 이런 얘기를 하는데 그게 제 개인적인 의견이라기보다는요. 우선, 제가 설정을 할 때는 그 인물은 개봉하는 영화만 보는 사람인 거예요. 사실 영화제에서 공개된 영화 중에 개봉까지 오게 되는 영화들이 많지 않거든요. 물론 제 의견이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여기 계신 분들 중에 부산국제영화제나 전주국제영화제 같은 데를 많이 다니는 분들도 계실 것 같은데, 가서 보면 진짜 훌륭한 영화들이 많잖아요. 그래서 진현이는 그런 영화제를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개봉하는 영화들만 임의적으로 봤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했을 거라고 봤습니다.

 

김건우: <부모 바보>도 감독님이랑 프로듀서님께서 자체적으로 배급을 하셔서 개봉까지 이른 작품이에요. 그래서 방금 하신 답변들이 와닿는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Q: 노숙인 잠자리를 고가도로 밑으로 설정한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이종수: 제가 뉴스 기사를 접한 적이 있어요. 실제로 저런 다리 교각 밑 공간에 살림을 차려놓고 사시다가 경찰들에 의해서 퇴거당하신 분들의 기사를 한두 개 정도 봤어요. 실제로 있는 사례들이더라고요. 근데 저기가 당시 제가 살던 집 근처 산책 코스인데 저 밑에 맨날 물건들이 좀 어지럽혀져 있더라고요. 그래서 한번 올라가 봤어요. 영화에서 진현이가 다리 밑에 찾아가잖아요. 거기 있는 간이침대 말고는 다 원래 있는 짐들이에요. 캐리어랑 이런 것들은 실제로 그 밑에 쌓여 있던 것들인데 나중에 치워야 돼서 보니까 SPA 브랜드의 20대 남자들이 많이 입는 옷가지들이 엄청 많더라고요. 그래서 그 부분들을 참고해서 했는데 사실 실감이 잘 안 되잖아요. 다리 밑에 누가 살아요? 그래서 더욱 제가 해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했습니다.

 

김건우: 앞서 말씀하셨던 장소에 관한 거 말고도 영진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어떤 모티브나 영감을 얻은 게 있으시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이종수: 제가 실제로 사회복무요원을 했었어요. 그래서 거기 있는 친구들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어떤 취급을 당하는지를 정확히 알기 때문에 그 두 입장을 가지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던 것 같아요.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이 사람들은 문제가 있을 것이고 사고를 칠 수 있는 좀 위험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근데 실제 그런 친구들도 있지만 안 그런 친구들이 더 많거든요. 그래서 그런 유해함을 내재하고 있는 인물로 출발해 보자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리고 영진이라는 캐릭터가 노숙한 사람치고는 몸이 되게 좋잖아요. 안은수 배우가 주짓수를 너무 좋아하거든요. 제발 운동 좀 그만하라고 했었는데(웃음). 사실 처음에는 저런 듬직한 유해함보다는 잃을 게 없는 사람에서 나오는 유해함을 구상했었어요. 촬영을 하면서 배우와 같이 협의를 해서 이런 캐릭터가 만들어졌고요. 그리고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 계속 조는 장면을 만들 때도 회피나 도피 같은 키워드로 캐릭터를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Q: 영화 포스터를 책 표지처럼 만드신 이유가 궁금해요.

 

이종수: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 스타일인데 거기서 연락이 왔습니다. 출처만 밝히고 사용해 달라고 하셨어요. . 또 진지하게 얘기 드리자면 영화가 원래 가지고 있는 흡인력을 가진 플롯을 사용하는 것보다는요. 소설처럼 우리 삶이 흘러가고 있는 와중에 어떤 부분의 한 조각을 그냥 그대로 떠오른 느낌을 내고 싶었던 영화였어요. 그래서 소설 같은 느낌이 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패러디의 의미로 그렇게 만든 것 같습니다.

 



Q: ‘영진이 캠코더로 촬영한 영상은 어떤 의미를 담으셨나요?

 

이종수: 캠코더라는 장치가 가진 특성이 되게 좋았어요. 시네마 카메라가 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자유롭게 줌인 줌아웃이 된다든지, 원하는 때에 원하는 곳으로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시점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잖아요. 그 부분이 우리의 기억이랑 닮아있다고 생각했어요. 영화에서 그 캠코더를 영진이가 갖고 다니잖아요. 근데 영진이가 캠코더로 무언가를 촬영하고 있는 모습은 영화에 나오게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 가지로 보이기를 바랐어요. ‘영진이가 현대미술을 하는 사람이니까 영진이가 꼭 찍었을 거야 라기보다는 영화 안에서 다양한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Q: 예전 세대 사람으로서 진현영진의 대응 방법이 무척 답답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갈등이 폭발되는 과정이 없는 것은 그냥 유예되고 있는 것일까요? 혹은 젊은 세대의 특징일까요?

 

이종수: 제 나이가 진현이랑 비슷한 나이거든요. ‘영진이 또래의 동생들이랑 어울리는 세대고요. 근데 제가 봤을 때 답답한 부분이 많아요. 이 세대 사람들이 뭘 잘못해서 답답하다는 게 아니고 예를 들어 90년대 청춘 영화를 보면 자기들이 화가 나면 술 먹고 막 난리 치고 고수부지 같은 데 가서 소리 지르고 불꽃놀이도 하고 청춘이다! 이러고 놀잖아요. 요즘은 그런 게 없는 것 같아요. 어떤 문제가 생기면 어디가 꽉 막혀서 자기들끼리 심통이 나서 표출하지를 않는 거죠. 표출의 방법이 달라진 것 같아요. 그래서 영진이는 사라지는 방법을 선택한 거고요. 삶 자체에 피로를 느끼는 세대들이 많아지지 않았나 생각했습니다.

 

Q: 할머니 대사 중에서 내가 왕년에 명동에서 비엔나커피 먹던 여자야는 어떻게 보면 감독님 세대에서 조금 떠올리기 힘든 대사일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작품에 삽입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이종수: 저는 영화에 제가 실제 경험했던 것들을 넣는 걸 되게 좋아해요. 왜냐면 작위적인 이야기보다는 실제 이 세상에서 일어났던 이야기를 집어넣었을 때 대체할 수 없는 현실감이 생긴다고 생각하거든요. 이거는 제가 옛날에 알바할 때 당한 거예요. 예전에 카페에서 알바를 했는데 커피를 내려드렸는데 너무 쓰대요. ‘그럼 다시 내려드릴게요하니까 무슨 원두커피가 이렇게 쓰냐고 또 그러시는 거예요. 그래서 어머니 원두커피는 원래 좀 써요. 시럽 좀 넣어드릴까요?’ 하니까 단 건 싫다 하시고 막 실랑이가 오고 간 다음에 어머니가 나가셨어요. ‘에이씨이러고 나가셨어요. 나가시고 한 15분 있다가 갑자기 가게 문을 탁 열더니 롯데리아 햄버거 먹던 거를 저한테 던지면서 너 지금 나 무시해? 나 옛날에 명동에서 비엔나커피 먹던 사람이야!’ 이러시는데 거기서 또 제가 말대꾸를 너무 하고 싶은 거예요. 비엔나커피는 크림이 들어가니까 달거든요. 근데 말대꾸를 하기 전에 나가셔서(웃음). 그 경험을 녹여냈어요.

Q; ‘영진’ 이가 당근 하러 갔을 때 처음으로 다른 옷을 입고 갔잖아요. 굳이 당근 하러 가는데 왜 차려입고 갔을까요? 혹시 그 옷이 지금 감독님이 입고 있는 옷이 맞나요?

 

이종수: 왜 이렇게 눈썰매가 좋으시죠? 이 옷 맞습니다. 맞히는 분이 있을까 싶어서 일부러 입고 왔습니다. 제 옷을 입혀서 촬영을 했어요. 돈이 없으니까. 그래서 영진이 과거에 나름 힙스터스러웠던 그런 부분들로 구성을 한번 해봤습니다.

Q: ‘영진’ 진현과 지내면서 생일 파티도 하고 진현은 조금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말도 없이 집을 나가고 갑자기 근무지에서도 사라진 건 진현네가 부럽다라는 게 트리거가 된 걸까요?

이종수: 맞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만들었어요. 등장인물 둘이 설정상 6~7살 정도 차이 나는데요. 형하고 잘 따르다가도 인생에 관여하는 순간 남남이 돼버리더라고요. 중간에 진현영진한테 미대 나오면 너처럼 다 거지 되냐고 물어봤을 때도 영진이 아무 말 없이 진현이 입고 있는 옷으로 시선을 쓱 옮기잖아요. 저도 어렸을 때 형들한테 잔소리를 들으면 왜 이래 나도 어른이야이런 감정이었거든요. 근데 심지어 그 자세한 사정들을 어느 정도 알면서도 이 사람이 나에게 이렇게 얘기를 했다는 거는 영진이 성격에서는 좀 닫아버리게 되는 트리거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Q: ‘영진이 조는 순간에 몽환적인 영상이나, 틈틈이 나오는 배경음 또한 몽환적인 느낌을 주는 것 같습니다. 지하철 문이 닫히는 소리가 집 문이 닫히는 장면과 절묘하게 배치되는 등 사운드와 화면의 조합에 많이 신경을 쓰신 것 같은데, 거기에 대한 감독님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이종수: 현실과 상상해서 만들어낸 세계의 경계를 주는 역할을 그런 요소들이 한다고 생각했어요. 영화는 보는 동안 이게 진짜라고 믿어야만 하는 거고, 믿도록 만들어야 하는 거잖아요. 그러려면 이 세계에서 작동되는 어떤 특정한 메커니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어떤 사람들은 되게 뜬금없다고 하기도 하는데 그 뜬금없음이 반복이 되면 그게 또 수긍이 되잖아요. 그런 부분들을 신경 써서 구성했습니다.

 

Q: ‘영진은 불면증인가요 기면증인가요?

 

이종수: 우선 저 다리 밑에 실제로 가보면 저 위에 차가 계속 다니기 때문에 사람이 잠을 자거나 휴식을 취하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공간입니다. 그래서 저런 공간에서 지내던 사람이 집이라고 인식되는 공간에 오면 분명히 좋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 것도 있고 영진이의 지금 상태가 마치 아기들이 자는 척하듯이, 본인이 듣기 싫은 이야기가 나올 때 자는 척하는 그런 부분들처럼 꼭 기면증 불면증이라기보다는 그냥 상태 자체가 녹초인 게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Q: 영화 엔딩 부분에 다리 모양이 다르고 얼음이 끼워져 있는 의자 장면이 인상 깊어요. 각기 다른 의자 다리와 녹아가는 얼음은 삶의 불안정함과 변화를 의미하는 것일까요? 감독님이 연출한 이 장면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이종수: 예를 들어 여기 이 테이블이 나무로 만들어져 있으면 나무는 오랜 세월 동안 풍화가 돼야 없어지는 거잖아요. 언제 없어질지도 모르고요. 얼음은 우리가 관측하는 동안 없어질 수 있는 물성을 가진 매개체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그것이 무언가를 받치고 있을 때 불안함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살다 보면 우리를 지탱하고 있는 행정이든 어떤 대체 방안 같은 것들이든 다 그런 식으로 받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특히나 제가 사회복무요원을 복지관에서 했었기 때문에 거기서 내놓는 방안들은 대부분 그런 방안들이 많았고 그런 것들을 좀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Q: 마지막 장면에 할머니의 사과에도 진현은 전혀 대답이 없는데 사실 그전에 불합리한 상황에서 대답이 늦거나 대답하지 않은 부분은 그동안 영진과의 대화에서 드러난 진현의 성격으로 어느 정도 예상이 되었는데 마지막은 확신이 안 들더라고요. 할머니의 사과를 들은 진현의 마음은 어땠는지 궁금해요.

 

이종수: ‘진현이라는 사람 입장에서는 사실 되게 큰 거예요. 부모 자식 관계에서 자주 벌어지는 일인데 자식은 그냥 자유 의지대로 행동을 한 건데 부모님 마음에 대못을 박는 경우도 있고 또 아이 입장에서는 크게 다가오는 것도 부모님 입장에서는 별것이 아닌 거 있잖아요. 그러니까 순례’의 세대 사람들은 어떤 갈등을 겪어도 다시 웃으면서 이게 사람 사는 거야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진현’ 세대 사람들한테는 이 자극 자체가 굉장히 고통스럽게 다가올 수 있는 거죠. ‘순례’가 자기한테 상처를 준 거에 비해서 사과가 너무 가볍게 오니까 그런 부분에 대해서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 모습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Q: 영화 초반에 쓰레기 수거 차량이 쓰레기를 모으는 장면이 나오고 후반부에 한 번 더 나오잖아요. 이 장면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종수: 그 장면 자체로 어떤 언어를 이야기하지는 않는데요. 전체적으로 이 영화가 반복의 기법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진현’영진을 대놓고 이야기를 하자면 진현이는 과거의 것들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는 염원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고요. ‘영진이 같은 경우는 반복되는 나날들을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차이가 있는 반복들을 많이 그렸죠.

 

김건우: 저는 <부모 바보>가 인서트 영화라고 생각하는데요. ‘영진'이 카메라로 직접 찍은 영상을 영화가 직접적으로 보여주기도 하고 또 공교롭게도 감독님의 다음 작품 이름이 <인서트>잖아요. 그 영화에서도 인서트라는 요소가 굉장히 흥미롭게 사용이 되는데 감독님의 인서트 영화 기법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이종수: 인서트는 어떤 맥락이 안에 있든 밖에 있든 좀 끼어 있는 느낌이잖아요. 뜬금없을 수도 있고요. 앞뒤 상황에 따라서 또 다른 걸 만들어낼 수도 있는 게 인서트라고 생각하는데 인간의 삶을 보면 다 같이 있지만 외롭잖아요. 살아 보니까 사람 간의 간극은 잘 줄어들지 않는데 또 간극이 줄어들었을 때 느껴지는 불편함도 있는 거예요. 점점 그런 시대로 가고 있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어요.


김건우: 또 질문을 드리면요. 영화에서 음악까지 직접 맡아서 하셨잖아요. 음악 작업을 하시면서 비하인드가 있으셨나요?

 

이종수: 비하인드라고 할 거는 음악 작업을 저 혼자 컴퓨터 앞에서 하는데 물을 한 번 쏟아 가지고 키보드가 고장날 뻔한 거 말고는 딱히 없는데. 사실 음악도 결국 다 돈이잖아요. 영화에 음악을 쓰고 싶으면 돈을 주고 사야 하는데 영화 제작비가 700만 원인데 어떻게 음악을 살 생각을 하겠습니까. 그래서 음악을 직접 만들었어요.

 

김건우: 저는 사실 이종수 감독님을 지지하는 쪽의 사람인데요. 왜냐하면 <부모 바보>를 공개를 하면서 감독님께서 하신 말씀이 영화를 1년에 한 편씩 꾸준히 내는 것이 목표라고 하셨어요. 저는 우리나라에서 매년 화제의 독립영화 감독님들이 나오고 있다고 생각해요. 근데 문제는 그 화제작을 만든 감독님들이 그다음 작품을 잘 내지를 못하고 계세요. 근데 이종수 감독님은 꾸준히 작품을 내셔서 저는 상당히 감사한 마음과 정말 비범한 감독님이라는 생각을 하는데 어떻게 작업을 계속하실 수 있는지가 궁금합니다.

 

이종수: 여기 계신 분들한테 한 편 보여 드리고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좀 거들먹거리는 것 같기도 한데요. 말씀을 좀 드리자면 저는 영화과를 안 나온 게 저의 신의 한 수인 것 같아요. 영화과 나오신 분들 욕하는 거 아닙니다. 그냥 작업하는 구조 자체가 다른 것 같아요. 제가 현대미술 할 때는 혼자 혹은 소수의 인원으로 없으면 없는 대로 하는 게 저희 방식이었거든요. 비디오 작업을 했으니까요. 퍼포먼스 배우나 무용수를 데리고 와서 퍼포먼스를 시키고 그걸 비디오를 담는 작업을 많이 했었어요. 그렇다 보니 이 비디오 찍는 거에 대한 두려움은 좀 없어요. 못 찍어도 그냥 못 찍은 거지 뭐이렇게 넘어갈 수 있는데 영화를 아카데믹하게 공부하다 보면 이것도 있어야 하고 저것도 있어야 하고 필요한 인적 자원들도 많고 필요한 도구들도 많고 또 최후에 나와서 관객을 만나는 그 부분까지 생각하게 돼요. 근데 이 영화가 굉장히 로지컬하게 가잖아요. 가능한 것들 위주로 하고 그런 과정들을 줄이다 보니 작업이 컴팩트해진 것 같아요. 물론 이런 영화 싫어하는 분도 계시겠죠. 아이폰으로 찍었냐는 얘기도 하시는데 저는 그런 얘기를 들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상관없는 게 동력인 것 같아요. 예전에 봉준호 감독님도 얘기하셨잖아요. 영화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만족이라고. 사실은 내가 얼마만큼 만족할 수 있느냐가 내가 어떤 작업을 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것 같고요. 기본적으로 많이 해본 사람이 잘할 거 아니에요. 근육을 계속 써야 근육이 크듯이 영화를 공개하지 않는 한이 있더라도 영화를 많이 찍어보는 사람이 잘 찍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많이 찍고 있어요.

 

김건우: 이 작품에 점수를 매긴다면 몇 점을 줄 것 같냐는 질문이 있었어요. 거기에 덧붙여서 이 영화를 보고 나오는 관객분들이 어떤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는지 이렇게 두 가지를 좀 여쭙고 싶습니다.

 

이종수: 일단 이 영화는 몇 점 만점이죠?

 

김건우: 5점 만점

 

이종수: 좋습니다. 왜냐하면 잘했다고 칭찬해 줘야 다음에 또 하잖아요. 개인적으로 저는 이 영화를 가지고 적어도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고 생각을 해서 일단 5점 받고 시작하겠습니다. 그리고 관객분들이 나가면서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은 생각은, 어떤 분들은 이 영화는 생각을 하면 괜찮은데 말하기 시작하면 약간 눈물이 난다는 분도 계시거든요. 저는 너무 만족하는 게 항상 관객과의 대화할 때 젊은 분들만 계시는 게 아니고 이렇게 다양한 세대들이 같이 이 영화를 보고 어떤 부분에서 하나라도 공감해 주는 그런 부분들이 동시대를 이야기했다는 보람이 있죠.

 

김건우: 대답 감사합니다. 이제 GV를 마무리하려고 하는데요. 감독님께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말이나 인사 말씀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이종수: 연휴 마지막 날인데 사실 오늘 진짜 많이 오신 거예요. 제가 GV 할 때 관객을 많이 본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오늘 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김건우: 이것으로 GV는 모두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일요일 오후에 이렇게 GV까지 참석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