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오극장은 대구 유일의 독립영화전용관으로 대구독립영화 아카이빙을 위한 작업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매년 <대구독립영화 연말정산>기획전과 책자 『오오카이브』를 통해 대구독립영화를 상영하고 기록합니다.
이제 물리적 아카이빙에 더해 대구독립영화 한 작품 한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대구영화발굴단 류승원님의 대구독립영화 비평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은 제11회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 단편경쟁 초청작 이주원 감독의 <누구나 겨울이 오면>입니다.
<누구나 겨울이 오면>은 12월, 오오극장 <대구독립영화 연말정산>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반항과 속하고자 하는 마음, <누구나 겨울이 오면>
대구영화발굴단 류승원
이주원 감독의 전작 <그녀의 밤은 아름답다>는 아이에게 좋은 미래를 약속하지 못해 자살하려는 나연을 경찰공무원 수험생인 은영이 막아서려는 내용이다. 두 사람은 나연이 공시를 준비하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편의점에서 마주친다. 나연이 번개탄을 찾자 은영은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아무런 정보가 주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은영은 나연의 죽음을 예감하고, 그녀의 선택을 교정하려 한다. <그녀의 밤은 아름답다>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교정에 대한 반발이다. 그 반발의 과정은 주로 나연과 은영의 대화로 이루어지며, 그 대화의 농도 자체가 묽어 아쉽긴 하지만, 이주원 감독은 죽음을 막아서는 관습적인 이유들에 대해 용감하게 반항한다.
이러한 반항은 <누구나 겨울이 오면>에서도 이어진다. 경상도의 한 집안의 가장이자 경호업체의 사장인 지환(이달형)은 몸이 아파 오는 자신의 몸을 숨기려 한다. 그 와중에 아들인 호준(최지헌)은 계속 자신의 결정들에 토를 달고, 아내인 수경(최민선)은 어쩐지 갈수록 자신보다 아들과 더 가깝게 지내는 것 같다. 가장으로서도, 경호원으로서도 지환은 자신의 권위를 점점 잃어간다. 동시에 지환은 그렇게 죽어가는 남성성에 분개하며 계속 고성을 지른다.
<그녀의 밤은 아름답다>와 달리 <누구나 겨울이 오면>은 남성성을 회복하려 분투하는 지환의 반항에 마냥 동조하지만은 않는다. 제목과는 달리 <누구나 겨울이 오면>에는 어딘가 따뜻한 시선이 존재한다. 고성을 지르는 지환과 그러한 지환을 말리려는 가족들. 두 입장에서 팽팽하게 대립하며 진행되던 영화는 이내 가족들의 편으로 점차 확고해진다.
지환의 반항은 사실상 지환이 쓰러지며 끝이 난다. 반항을 할 수 없는 (몸) 상태가 된 것이다. 마음속에 잔존해있는 지환의 남성성도 그의 육체가 받쳐주지 못하자 더 이상 드러나기 어려워진다. 고성은 사라지고, 자신의 몸을 물리적으로 지탱해 주는 호준과 수경에게 기대며 지환은 점점 가족의 구성원이 되어간다. 지환의 반항이 사라지자, 호준과 수경은 지환을 정신적으로도 받아들인다. 또한 지환 역시 자신의 남성적 죽음을 점점 체화해 가는 듯 보인다-지환은 몸의 변화로 인해 생리대를 착용한다.
집단에 속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상태를 조정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의 상태를 바꾸지 못하면 집단에 속하지 못한다. 지환은 신체를 홀로 지탱할 수 없어 생존을 위해 자신의 상태를 가족에게 맞춘다. 이주원 감독은 이러한 지환의 모습을 안온한 가족극으로 찍음으로써 병자를 보호한다. 또한 그러한 순간들을 아름답게 바라본다. 비로소 가족의 구성원이 되는 이러한 결말은 누군가에게 감동적으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감동적인 순간들은 지환이 쓰러졌기 때문에 비롯되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녀의 밤은 아름답다>의 은영이 문득 생각난다. 은영은 나연을 무조건적으로 구하려 한다-은영의 꿈이 경찰이라는 것을 상기해 보자. 은영이 나연을 도와야겠다는 마음이 든 최초의 순간에, 은영의 구원의 방식에는 나연의 상태가 없다. 일단 나연의 목숨부터 구하는 게 중요한 것이다. 은영은 이내 막무가내로 나연에게 대화를 청하며 나연의 죽음을 유보하려 한다. 결국 대화가 이어지는데 성공하고, 나연이 자신의 뱃속에 든 아이에게 좋은 미래를 약속하지 못해 죽으려 했다는 말을 건넬 때, 은영은 나연의 아이를 자신의 동생으로 동일시하며 그녀의 말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제게 걸려 온 동생의 전화를 나연이 받도록 한다. 이 장면은 굉장히 훌륭한데, 죽음을 막아서려는 은영의 동기가 사실 어딘가 독선적인 면이 있는 것은 아닐지 의심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그 이후 위로의 주체가 바뀌어 나연이 반대로 은영을 위로하고 있는 장면까지 보고 나면 이러한 은영의 도움을 단순히 따뜻하게 받아들여야 할지 더욱 난감해진다.
은영은 집단적인 욕망을 꿈꾼다. 은영은 나연이 죽어서는 안 된다는 정언을 먼저 마음에 품은 채로 나연이 죽으려는 이유를 듣는다. <그녀의 밤은 아름답다>에서 이주원 감독은 (은영으로 대표되는) 집단에 관한 욕망에 반항한다. 하지만 <누구나 겨울이 오면>에 오면 이주원 감독은 가족이라는 집단을 선뜻 수락한다-게다가 공고히 한다. 물론 전혀 모르는 타자(은영)와 가족들(호준, 수경)은 다른 집단이다. 하지만 거기에 도사리는 한 중년 남성(지환)을 대하는 20대 남성(이주원 감독)의 시선에 ‘은영’적인, 혹은 몰이해적인 태도가 깃들어 있다는 인상을 쉽게 지우기 힘들다. 과연 지환의 불가피한 가족과의 융화는 마냥 아름다운 라스트씬일까. 개인적으로 나는 남성성을 지키려던 한 중년 남성의 고성과 몸짓이 이렇게 쉽게 무화되는 것이 쉽사리 납득이 되지 않는다. 이주원 감독이 섣부르게 (자신이 속할 수 있는) 집단을 꿈꾸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든다.
<누구나 겨울이 오면>은 여타의 가부장이 나오는 영화들과 달리 한 아버지에게서 가부장의 권위와 가족에 대한 애정이 함께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한 아버지의 초상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각자의 몫이지만, <누구나 겨울이 오면>은 어찌 됐든 지환의 서투른 표현 방식을 애정으로 상정한다. 동시에 그 애정이 아들 호준에게 계속 거부를 당하는 데서 지환은 상심한다. 그럴 때마다 이주원 감독은 권위와 애정의 동시적인 표현을 숙고한다. 지환은 호준과의 팔씨름을 통해 권위를 세우려고 하는 동시에, 호준의 어린 시절이 담긴 홈비디오를 보며 (호준에게) 닿지 않는 자신의 애정을 환기하기도 한다. 여기서 때로 권위는 반항이 되고, 애정은 귀속이 된다. <누구나 겨울이 오면>은 너무 쉽게 귀속의 편을 든다. 그것도 지환을 죽여가면서.
P.S <누구나 겨울이 오면>은 ‘2024 제11회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 단편경쟁’에 초청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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