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예술, 작가 (with 갤러리 삼삼다방)
#1 구민호 작가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은 관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교감하고 공감할 수 있는 공간을 꿈꾸며 삼삼다방을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삼삼다방은 독립영화와 어울리는 대안예술이 동시 상영되는 복합문화공간이기도 합니다. 삼삼다방의 벽면은 지역 젊은 예술인들의 실험적인 전시가 상시적으로 진행되는 갤러리로 활용되어 오오극장을 찾는 관객들에게 영화뿐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예술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대구, 예술, 작가’ 코너에서는 그달의 갤러리 삼삼다방 전시 작가를 만나 전시를 이해하고 작가의 작품 세계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지난 8월 말부터 갤러리 삼삼다방에서는 대구단편영화제의 부대행사 중 하나로 지역 작가들이 참여하는 독립영화 포스터 리디자인(Re-Design) 프로젝트 ‘디프 앤 포스터 (diff & poster) 전시가 한창입니다. ‘디프 앤 포스터’는 단순히 포스터를 디자인하는 차원을 넘어 디자이너들과 독립영화가 서로의 예술영역을 이해하고, 나아가 네트워크를 만들어가는 ‘독립영화+디자이너 협업 프로젝트’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제23회 대구단편영화제 경쟁작 작품을 재해석하여 만든 포스터들로 작가들의 도전과 실험 정신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뜨거운 여름을 수놓았던 대구단편영화제가 성황리에 막을 내린 후, 오오극장이 구민호 작가를 만났습니다. 참여 작가로 ‘디프 앤 포스터’와 인연을 맺은 뒤 현재 전시 기획까지 맡고 있는 구민호 작가는 대구에서 ‘구김종이’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전시 비하인드 스토리부터 대구에서 창작자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까지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구민호 작가에게 직접 들어보았습니다.
독립영화 + 디자이너 협업 프로젝트, '디프 앤 포스터 diff & poster'
구민호 작가
디프앤포스터전(diff&poster展)이 2018년부터 시작했으니, 이제 5년이네요. 처음에 어떻게 ‘디프앤포스터’를 시작하게 되셨나요?
처음에는 참여 작가로 섭외가 되었어요. 당시에는 정재완 교수님과 현준혁 디자이너가 함께 디프앤포스터전을 기획 했었는데요, 제가 독일에서 유학하고 있었을 때라 그분들이 저를 참여 작가로 섭외를 했었어요. 재밌는 행사겠구나 싶어서 흔쾌히 참여를 했었고, 2019년에 한국에 돌아온 후 2020년부터는 좀 적극적으로 기획에 참여를 한 것 같아요.
어떤 부분이 재밌을 것 같다고 느끼셨나요? 영화를 모티브로 작업을 한다는 게 어떻게 보면 흔한 컨셉일 수도 있잖아요. 작가님들은 어디에서 매력을 느끼셨는지 궁금하네요.
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전주영화제의 100필름 100포스터 행사가 있는데요. 이런 기회가 생기면 그래픽 디자이너는 너무 재밌는 것 같아요. 보수, 작업료 이런 걸 떠나서 굉장히 자유롭게 접근을 할 수 있거든요. 게다가 이미 너무 훌륭한 이야기가 만들어져 있는 상태잖아요. 그걸 흡수해서 작업을 꺼내는 과정이 디자이너한테는 되게 재미있어요.
그리고 대구단편영화제는 대부분 기존 포스터가 없는 작품들이 많잖아요. 그게 또 매력으로 다가올 때도 있어요. 이미 포스터가 있는 영화는 저희가 아무래도 포스터를 만들 때 계속 신경이 쓰이기 마련인데, 이 행사는 그럴 여지마저 없이 그냥 완전히 자유를 주는 것 같아서요.
작가님께서는 100필름 100포스터 행사에도 참여하시고 계시죠. 그렇다면 장편 영화와 단편 영화의 차이랄까요, 전주영화제와 대구단편영화제의 작업에 차이가 있을까요.
디자인 영역에서의 차이라기보다는 영화 자체가 갖는 특징이 뚜렷한 것 같아요. 장편 영화는 조금 긴 호흡이고, 단편 영화는 짧은 호흡이죠. 소설로 치면 장편과 단편, 아니면 소설과 시라고 비교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조금 더 축약돼 있고 그리고 축약돼 있는 만큼 디자이너가 끄집어낼 모티브가 확실한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런 부분에서 단편영화는 조금 더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가 있겠네요.
사실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온전하게 창작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무대가 그렇게 많지 않아요. 왜냐하면 항상 클라이언트가 있고 프로젝트마다 가야 되는 방향이 있다 보니까 디자이너가 100%의 창작력을 발휘하는 것을 항상 조금씩은 막아놓기 마련이거든요. 그래서 디프앤포스터 처럼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는 행사를 디자이너는 항상 반기는 것 같아요.
디프앤포스터전에 대해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볼까요. 올해는 43명의 작가님이 참여를 하셨는데요, 작가 섭외와 작품 배분 등 많은 조율 과정이 필요했을 것 같습니다. 디프앤포스터전은 어떤 준비 과정을 거쳐 진행되나요?
매년 비슷한 시기에 열리는 행사다 보니까, 평상시에 디자이너들의 작업물을 인스타그램이나 sns 통해서 보면서 염두에 두는 것 같아요. 이 디자이너랑 작업하면 재밌겠다, 이 디자이너가 이런 창작물을 내놓았을 때 어떤 느낌일까 구상해보는 거죠. 그래도 대중없이 할 수 없으니까 약간의 가이드는 정해놨어요. 서울에 있는 잘 알려진 디자이너들로만 너무 채우지 말고 다양한 지역의 디자이너들과 함께 하자고요.
또 섭외를 하다 보면 작가님들이 서로 추천을 하시기도 하거든요. 작년 같은 경우에는 대전에 있는 김주애 디자이너가 대전 분들을 소개해 주셔서 섭외를 하기도 했었고요. 올해 같은 경우에는 대전, 대구, 부산 다 있는데 전라도권 디자이너가 왜 이렇게 없을까 해서 광주에 계신 사각프레스 최지선 대표님한테 좀 문의를 했었어요. 광주에서 활동하는 아니면 근처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들 몇 분 추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연락을 드리기도 하고. 이 과정 자체가 늘 재밌는 것 같아요, 저한테는. 왜냐하면 늘 매체에서 보던 디자이너들 말고 새로운 디자이너들을 찾는 재미가 있거든요. 실제로 대구 내에서도 몰랐던 디자이너들이 갑자기 나타나기도 해요. 이번에 참여한 대구 디자이너들이 15팀 정도 되거든요. 사실은 저도 이 행사를 하면서 처음 만나는 분들이 많아요.
주로 SNS로 직접 찾아보시기도 하고, 추천도 받으시고, 이런 과정을 거치시는군요. 그러면 작품은 어떻게 배분을 하시나요.
저희가 섭외하는 작가님들이 매년 계속 같이 하면 좋겠지만, 영화가 한정적이기 때문에 나름의 가이드를 두고 있어요. 하나는 참여 횟수가 세 번이 넘어가면 다른 분들에게 기회를 주자는 것이고, 또 하나는 새로 참여하는 분들에게는 우선권을 주자는 거예요.
우선 영화제 측에서 공유한 시놉시스를 작가님들께 드리고 1지망부터 3지망까지 세 편의 영화를 받아요. 그걸 구글 스프레드 표에 쭉 깔아놓고, 처음 참여하시는 분들 연차가 있으신 분들 이렇게 나눠서 나름대로 시스템을 갖춰서 배분하고 있어요.
그러다보니 연차가 쌓일수록 원하는 영화에서 멀어지는 부작용이 생기기도 하네요. (웃음)
그래픽 디자인의 특성상 글자를 다루시는 분들이 많다보니 영화 제목이 재밌으면 글자도 재밌게 나오잖아요. 그래서 일단은 제목이 흥미를 유발하면 관심이 가는 것 같아요.
저는 어떻게 배정하실까 상상했을 때, 작가님들의 작업 스타일을 고려해서 잘 맞는 영화랑 매치하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네. 저도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저희가 시놉시스를 받긴 하지만, 이 영화들을 거의 모르는 상태로 시작을 하니까 상상을 하기가 어렵더라고요.
시놉시스를 받아서 영화를 선택하고, 확정된 후에 영화를 받아 보시고 나서 작업을 하시는 거죠.
아주 복잡하고 과학적인 시스템으로 돌아가는군요. 그러면 혹시 작업하시는 작가님들께 특별한 디렉팅을 주시기도 하나요?
저희가 드리는 디렉팅은 제목이 원제 그대로 들어가야 된다는 것, 대구단편영화제 로고가 들어가야 된다는 것, 그리고 원하신다면 감독님 이름이나 배우님 이름을 넣을 수도 있다. 뭐 이런 정도의 디렉팅이에요.
작가님들의 자유도가 높은 환경이네요. 그래서인지 포스터의 스타일이 작품마다 다르다는 점에서 보는 재미가 있는 전시인 것 같아요.
그래픽 디자인에도 여러 분야가 나뉘잖아요. 타이포그래피, 사진, 일러스트레이션, 영상 등 이렇게 분야가 다양한데, 일부러 한 분야에 치중되는 걸 피하는 편이에요.
예를 들어 <씨티백>을 작업하신 장혜진 작가님은 사진 작가이시고, <E:/말똥가리/사용불가 좌석이라도 앉고 싶...>의 김고보 작가님 같은 경우에는 글자만 주로 그리시는 분이에요. 이렇게 다양하게 모을 수 있도록 노력을 하고 있어요.
대구단편영화제 기간 중에 작가님들을 위한 자리가 있었죠? ‘디프앤포스터의 밤’이라는.
네. 올해 가장 많은 작가들이 모였어요. 30명 정도 신청을 하셨는데 그중에 안 오신 분들도 조금 있고 해서 스물 몇 분 정도 오셨습니다. 다른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가님들도 많은데, 이번에는 특히 멀리서 일부러 시간을 내어 오신 분들도 있으셔서 뜻 깊은 자리였어요. 사실 너무 필요한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작가들끼리도 교류할 만한 자리가 많지는 않거든요.
디프앤포스터전은 영화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을 제작하게 되는데요. 영화마다 각각 뚜렷한 개성이 있고 작가님들도 본인만의 스타일이 있으실 것 같아요. 이 둘을 어떻게 조율해서 만드시는지가 궁금하더라고요.
일단은 그래픽 디자이너가 만드는 포스터라는 매체 자체가 어떤 장르든 붙기가 쉬운 것 같아요. 그래픽 디자이너들은 그림을 그리든 사진을 찍든 포스터를 만들 때 타이틀 글씨를 넣는 것에 대해서 거부감이 없어요. 그리고 다들 어느 정도는 타이포그래피를 다룰 수 있는 분들이라서 어떤 분야에 갖다 붙이든 그 분야와 융합이 잘 되는 것 같고요.
오히려 이런 행사가 가지는 장점은 그래픽 디자이너가 자기가 늘 일하면서 취했던 방법 외에 새로운 방법을 시도해 볼 수 있다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트랜짓>을 작업해 주신 황보석주 디자이너도 글씨를 주로 다루는 디자이너인데 이미지 작업을 아주 멋지게 해주셨고, <상실의 집>을 만든 장수영 디자이너는 한글 폰트 디자이너인데 이번에 아주 멋지게 그림을 그려주셨더라고요.
사실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디자인 스타일 외에 다른 걸 시도하려면 용기가 필요한 경우가 많거든요. 근데 이 행사 같은 경우에는 가이드나 제재를 가하지 않고, 대중들한테 바로 보여줄 수 있고, 반응도 바로 알 수 있으니까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오히려 고마운 행사인 것 같아요.
그럼 포스터의 디자인이나 스타일을 결정하는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일단은 접근하는 방식이 사람에 따라 다 다를 것 같긴 한데요. 저 같은 경우에는 그 영화를 보고 가장 중점이 되는 이야기가 뭘까를 고민하고, 그 다음에는 영화의 분위기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 그리고 이 영화를 봤을 때 한 명의 관객으로서 내가 느낀 점에 좀 더 주안점을 두는 것 같아요.
저는 작품을 보고 작가님들이 포스터를 통해서 리뷰를 쓰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 리뷰라는 말이 굉장히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하면 저 같은 경우에는 그렇거든요. 이 작업을 할 때마다 ‘이렇게 작업을 하면 관객들에게 더 주목을 받을 수 있겠지?’ 아니면 ‘영화 감독님들이 이런 작업을 하면 더 좋아해 주시겠지?’라는 판단은 있지만, 그걸 애써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거든요. 관객으로서 이 영화를 봤을 때 내가 전달하고 싶은, 이 영화를 통해서 내가 느낀 점을 그대로 표현하는 게 오히려 이 행사에는 더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혹시 감독님들이 오셔서 마음에 든다, 안 든다 말씀하신 적은 없나요?
그런 자리가 있으면 좋은데 아직까지는 감독님들과 만날 기회가 많이 없었어요. 2년 전인가 ‘대화의 장’에서 전시를 할 때 ‘디프앤포스터의 밤’의 아주 축소 버전을 했었거든요. 그때 한 감독님과 맥주 한 잔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요. 아쉽게도 이번 행사에는 감독님들이 안 오셔서.
이제 디프앤포스터 전시 말고 작가님 이야기를 해볼까요. 작가님의 역사를 간단하게 소개해주시겠어요?
저는 ‘구김종이’라는 1인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2019년 독일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후부터 시작했어요. 일러스트레이터 미늉킴 작가와 사무실을 같이 쓰고 있는데요, 미늉킴 작가가 운영하는 ‘블랙퍼스트 클럽 프레스’라는 그림책 전문 출판사에서 여러 가지 작업을 도와주기도 합니다. 구김종이라는 이름이 사실은 제 성이랑 그 친구 성이랑 그리고 키우는 고양이 이름을 합친 거예요.
제가 주로 작업하는 분야는 타이포그래피와 북 디자인처럼 글자를 다루는 작업입니다. 글자를 직접 만드시는 작가님들도 계시지만, 저는 그것보다는 글자를 어떻게 다루는지에 대한 작업을 많이 하고 있어요.
미술 전공까지 내려가면 너무 옛날 얘기이긴 한데요. 제가 이 근처 왜관이 고향이거든요.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는 걸 좋아했는데 그 주변에는 미술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루트가 별로 없었어요. 지역에서 활동하시는 만화 작가님이 그림을 좀 배워보지 않겠느냐 제안을 해주셔서 거기서 그림을 배웠어요. 그러던 중에 친구가 그런 데서 뭐 하냐, 차라리 미술 학원을 가자 이렇게 친구 따라 강남을 간 거죠. 고3때 부랴부랴 미술 입시를 준비를 해서 대학에 가게 되었습니다.
작가님께서 주로 하시는 글자를 다루는 작업과 그래픽 디자인이 어떤 것인지 조금 더 알려주시겠어요?
그래픽 디자인의 분류가 요즘은 너무나 다양해져서 제가 어떻게 한 단어로 설명을 해드리기 어려운데요. 일단은 타이포그래피를 사용하는 그래픽 디자이너는 그냥 표현의 도구가 글자인 것 같아요. 사진을 찍는 분이시건, 순수 미술을 하시는 분이시건, 그림을 그리는 분이시건, 자기만의 스타일과 도구가 있을 텐데요. 타이포그래퍼에게는 그 도구가 그냥 글자일 뿐이고요. 글자도 사실은 우리가 사회적으로 합의한 기호 체계, 그러니까 일종의 이미지거든요. 포스터나 책이나 어떤 매체든 이 큰 이미지 안에서 글자를 어떤 식으로 사용할 것인가를 항상 고민하는 것 같아요.
작가님께서는 대구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시는데요. 지역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이랄까요, 지역에서 활동한다는 것이 작가님께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영화 제작도 비슷하지만, 대부분은 서울에서 활동하는 것을 선호하시잖아요. 그럼에도 대구에서 활동하기로 하신 데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저 같은 경우에는 대구에서 활동을 한다는 것에 좀 의미가 큰 편이에요. 저도 졸업 후에 여느 학생들처럼 당연하게 서울로 취직해서 일을 하고 있었어요. 어느 날 당시 대구에서 대학원생이었던 동기한테 연락이 왔어요. 앞으로 대학원을 졸업하면 어떻게 활동을 해야 될지 서울에 아무 연고도 없는데 서울로 가야 되는 건지 아니면 대구에서 남아서 작업을 할 수 있는 건지 물어보더라고요. 평소에는 저도 대구라는 지역에서 그러니까 자기가 태어나고 공부한 그 지역에서 계속 디자이너로서 삶을 영위해 나간다는 것이 굉장히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렇게 질문을 받으니까 갑자기 혼란스럽더라고요. 왜냐하면 나는 서울로 무대를 옮겨서 취직을 하고 경제 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 친구가 그렇게 얘기를 하니까 ‘나는 왜 서울에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때부터 관심을 가지고 바라봤던 것 같아요. 우리는 대구에서 교육을 받고 디자이너로서 활동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췄는데 왜 지역에서 활동을 하지 못하는가 의문이 들면서, ‘이건 조금 불합리한 거 아닌가?’ 싶었어요. 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디자이너로서 훈련을 받고 또 그 과정에서 여러 사람들도 만날 테고, 그렇게 형성된 인맥과 지인 그리고 가까이 사는 가족 이런 걸 다 포기하고 서울로 올라갈 가치가 있는 건가? 이건 뭔가 잘못된 것 같더라고요.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자기의 연고지, 그러니까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고 인맥이 형성되어 있는, 자신이 교육 받은 그 도시에서 디자이너로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것 때문에 유학을 다녀왔습니다. 왜냐하면 주류와 멀어진 삶이다 보니까 나름대로의 기준을 가져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맞아요. 영화 창작자들의 상황도 비슷한 것 같아요. 영화를 배우고 활동하기 위해서는 대구를 떠나 서울로 가야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렇다면 지역에서 활동하는 데 있어서 특별히 힘든 점이 있을까요.
아주 많죠. (웃음) 누군가가 어떤 지역에서 뿌리를 내리고 창작 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 그에게 희생이라는 단어를 요구하게 된다면 그것 자체로도 이미 엄청난 방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작업자로서 살아가는 삶 자체가 그 지역에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힘들어진다면 말이죠.
모든 인프라가 서울에 집중돼 있다 보니까, 지역에서 활동하시는 디자이너분들이 소외감을 느낀다거나, 아니면 직접적으로 경제적인 문제를 겪는다거나 그런 사례가 많더라고요. 그중 하나가-이렇게 오늘 좋은 기회로 인터뷰를 하고 있지만-, 디자이너들이 호명되지 않는다는 문제도 크고요. 매체의 부족도 하나의 원인이라고 생각해요.
최근에 은사님이신 정재완 교수님은 서울 디자이너라는 단어를 쓰시기 시작했다고 해요. 디자이너들이 모이는 장소에서 누군가가 본인을 소개해 줄 때 항상 ‘대구에서 활동하고 계신’, ‘지역에서’, ‘지역 디자이너’, ‘대구 디자이너’ 이런 식으로 앞에 수식어가 붙는데, 서울에 있는 디자이너들한테는 그런 수식어를 붙이지 않으니까요.
지역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은 그게 이상하다는 걸 아는데, 서울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잘 모르는 문제죠. 이제 마지막 질문입니다. 작품 활동을 하는데 영감을 주었거나 영향을 끼치는 영화가 있을까요. 추천하고 싶은 영화도 괜찮습니다.
사실 영화를 꽤 많이 보는 편이라서 어떤 영화 하나를 딱 짚기는 조금 어려운데요. 이번에 디프앤포스터에서 작업했던 장병기 감독님의 <미스터장> 되게 재밌게 봤고요, 그전에 장병기 감독님이 연출하신 <맥북이면 다 되지요>도 되게 흥미롭게 봤어요. 일상에서 오는 사소한 포인트들을 잘 관찰하시더라고요. <미스터장>을 보다 보니까 이성민 배우가 주연한 <보안관>이라는 영화도 생각이 나더라고요. 두 영화 모두 외부에서 지역으로 온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갈등을 다루고 있거든요. 기회가 된다면 같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디프앤포스터 전시는 오오극장 내 갤러리 삼삼다방에서 10월 9일까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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