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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불문! 대구독립영화

배용균의 비밀 노트 #2

장르 불문! 대구독립영화

오오극장은 대구 유일의 독립영화전용관입니다.
대구독립영화의 다양한 방향을 모색하고 독립영화를 사랑하는 대구 관객들과 호흡하기 위하여,
새로운 시선으로 대구독립영화에 접근하는 장, <장르 불문! 대구독립영화>를 연재합니다.
대구독립영화를 주제로 소설, 칼럼, 에세이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을 소개합니다.
그 시작으로, 영화사 연구자 금동현이 대구를 대표하는 전설의 영화감독 배용균을 주제로 쓴 글을 선보입니다. 
매주 수요일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배용균의 비밀 노트 #2

 

                202367

 

From: likeacomet@naver.com

To: dUCkChil@⏻⏻⏻.com

Sent: 2023-06-07 () 09:03

Subject: Re: 성카타리나관에서

안녕하세요 ĐC.

덕분에 배용균 감독의 노트를 볼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해요.

장염은 조금 괜찮아지셨나요?

정말 감사해서 건강이 괜찮아지시면 꼭 인사를 드리고 싶어요.

ĐC님의 집이나 제 집도 괜찮아요. 설사 대화중에 화장실 가는 일이 많더라도요.

다시 연락주세요. .

 

아침에 일어나서 이런 메일을 써 보냈다. 채 십분도 지나지 않아서 네이버로부터 이런 메일이 왔다.

 

고객님께서 보내신 메일이 전송되지 못했습니다. 아래 실패 사유와 해결 방법을 참고 부탁드립니다. / 실패사유 :받는 사람이 속한 메일 서버의 문제로 메일이 전송되지 못했습니다.”

 

주소가 처음 보는 사이트기는 했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라 당황스러웠다. 몇 차례 더 메일을 보내봤지만 같은 메일 연거푸 받았다.

 

                202368

 

요나스 메카스의 『영화작가들의 대화』를 번역하신 이여로 씨에게 받았다. 역자의 말에 내가 언급되었다. 근자의 주변 활동들도 함께 소개되어 이래저래 생각을 하게 되었다.

 

대전권역의 청년 영상창작자 커뮤니티 INK는 제도화된 한국독립영화의 한계를 벗어나 자생적인 제작, 보존, 영화제, 영화관 건립 등을 추구하며 관객성과 창작자성을 지금의 사회적 현실 위에 다시 쌓아가고 있었다. 이는 새로운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유롭게 새로운 영화를 탐색하기 위해서영화작가들끼리 협동하자는 1967년 이탈리아의 외침을 돌려받은 듯 했다. INK를 소개해준 마테리알(ma-te-ri-al)은 가깝지만 들리지 않던 이야기들을 모으고 연결해 새로운 가청범위를 만든다는 점에서 진정 비평 플랫폼의 역할을 해주었다. 또 광대무변한 한국영화사 연구를 비롯 대구 오오극장과 함께 지역적 영화 실천을 이어가는 금동현 님

 

새로운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유롭게 새로운 영화를 탐색하기 위해서라는 구절이 참 좋아서 곱씹어보았다. 만들기 위해서라고 할 때 영화는 하나하나의 작품Movie 같지만, 탐색하기 위해서라고 하면 영화는 하나의 개념이나 문화Cinema 같다. 하나의 작품이건 문화건, 그것을 흥미롭게 만드는 사람은 항상 후자였던 것 같다. 그 이유는 뭘까? 새로운 영화를 탐색하고자 하는 사람은 대게 (일단은, 먼저, 언제나) 관객이다. 소설가 토니 모리슨은 이렇게 말한 적 있다. “읽고 싶은 책이 있는데, 아직 쓰인 게 없다면 당신이 써야한다.” 쓰려면 먼저 읽어야 한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세상에 영화는 너무 과하게 많이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영화의 생태계=창작의 생태계로 오인하는 사람들에게 저주가 꼭 반드시 ぜひ 저주가 내릴 지어니

 

                2023625

 

비 출간 자료의 육필을 보는 일은 힘들다. 사람들은 순간의 인상과 상념을 잡아두기 위해 메모 한다. 메모 하는 몸은 글씨를 날리기 마련이고, 날린 글씨는 부호이기 이전에 모양처럼 보인다. 육필을 읽는 사람은 먼저 모양을 부호로 만들어야 한다. 나는 아직도 재작년,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지독한 악필로 유명했던 김기영의 육필을 들여 봤던 날들의 막막함을 떠올리곤 한다. 그리고 순간의 인상과 상념은 대개 근사하지 않다. 누군가 빤쓰 내리면, 어휴 보기 싫어요. 하는 게 당연지사

 

오늘도 대구교대 앞 스트롤 커피에서 몇 시간 동안 갱지를 바라보았다. 덕칠의 메일은 오지 않고, 할일은 많고, 육필 해독은 고됐기에, 휘낭시에를 하나 주문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고아무튼 그러다 새삼 육필만이 주는 복됨을 깨달았다.

 

막막하게 종이를 뚫어져라 오래도록 숨은 부호를 찾기 위해 글자를 한참 들여 보면 때로, 어느새 더디게 식별되던 글이 후루룩, 읽히는 때가 온다. 내밀한 인상·상념 같은 것이 공유되었다는 데서 오는 착각이겠지만, 그 잠깐 동안은 내가 육필을 썼던 사람과 동기화 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곤 한다. 후루룩 읽혔던 부분을 그대로 옮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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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을 잃은 방황, 독버섯처럼 자라올라온 산업사회의 병폐, 인간소외, 돌아갈 수 없는 고향, 상실된 자연, 대중 상업주의에 의한 가치의 전도, 전도된 가치의 광기 어린 전횡, 내쫓겨 공동화된 영혼의 빈자리, 정화작용이라는 복원능력을 잃어버리고 불모의 폐허가 되어가는 검은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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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비가 아주 많이 내렸다.

 

 

                2023630

 

의도인지는 모르겠다. 배용균은 누구보다 작품에 공을 들인 것 같지만, 배용균의 영화는 배용균보다 적게 말해진다. 배용균이 은둔자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만, 검으나 땅에 희나 백성을 본 사람은 드물다. 한 해적에 의해 검으나 땅에 희나 백성훨씬더 쉽게 볼 수 있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여하간 이런 탓일지? 배용균은 여전히 맵핑이 거의 안 된 감독으로 남아있는 것 같다. 1989년 평자들은 충무로 상공에 UFO처럼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 출현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실로 19899월 잡지 영화에는 이런 문장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배용균 감독은 기성 영화계에서는 전혀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은 낯선 얼굴”, “무명의 기인(?) 배용균 감독의 수수께끼 같은 작품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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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천은 한국 현대사의 알레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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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배용균이 해천은 한국 현대사의 알레고리라고 적어둔 메모를 보았다. 또 로카르노 국제영화제 수상 이후 임안자와의 인터뷰에서 배용균은 나는 한국문화로 다시 돌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배용균을 한국의 타르코프스키라고 손쉽게 부르는 것은 많이 봤지만, 그 말을 하는 사람들조차 한국을 충분히 생각하지는 않은 것 같다. 한국 바깥은 없다. 한국영화의 기인, 한국영화의 낯선 얼굴, 충무로 상공에 뜬 UFO라는 표현이 한국 바깥을 지시하는 건 아니다. 그건 단지 우리가 모르는 한국의 모습일 뿐이다.

 

라멘을 먹으려고 츄카소바설철수를 갔는데 문이 닫혀있다. 그 거리를 따라서 철물점 밤 산책을 했다. 골목마다 할머니들이 작은 의자를 꺼내두고 앉아있다. 학생, 쉬고 가. 라고 말을 걸면 걸음을 재촉했다.

 

 

                202372

 

 

1999년 토니 레인즈는 일본의 자주영화, 중국의 지하전영보다 한국의 독립영화가 더 흥미롭다고 말했다. 동아시아의 다른 인디 영화에 비해 한국의 독립영화는 투쟁의 대상이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 말이 더는 유효하지 않은 것 같다.

 

사회적 투쟁의 대상을 찾고 그것을 물질화 할 때 가질 수 있는 박력은 어디로 갔을까? 1999년에는 덕칠이란 이름이 많았을 것 같다. 그때는 배용균을 스승으로 섬기던 대구의 감독도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배용균의 노트에는 자주성을 지키기 위한 메모로 가득하다. 합리적이라던가, 스마트하다던가, 이런 경영자의 단어들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이런 말을 참 많이 듣는다. 덕칠은 어디 갔을까? 설사는 멎었을까?

 

 

-글 금동현